강태선
姜太善1924. 6. 15 ~ 생존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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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4년 6월 15일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에서 태어났다. 일본 활동 당시에는 오사카시(大阪市) 히가시구(東區) 빈고마치(備後町)의 마에다(前田) 집에 거주하였다. 18세가 된 1942년 6월 오사카로 유학하러 떠나 신문 배달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당시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을 치르기 위해 일본인은 물론 식민지에서 온 인원까지 총동원하여 물자와 인력을 수탈하던 상황이었다. 국가적 총력전의 와중에도 직장이나 학교에서 한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가 격심하였다. 중학교 입학을 위한 입시 준비를 하던 중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일본인과 달리 무조건적 차별 대우를 경험하면서 민족의식은 점차 높아져갔다. 체험을 통한 민족의식 형성과 더불어 독립운동 사상에 영향을 준 것은 중국 국민당 간부이자 이론가인 주불해(周佛海)가 지은 『삼민주의(三民主義)』 등의 서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한국 민족의 진정한 행복은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국을 건설하는 길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독립사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곧 실천에 옮겼다. 독립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하고자 오사카에 온 지 두 달만인 8월경 친지인 지원호(池源鎬)·심종보(沈宗輔) 등과 모임을 갖고 독립운동의 방안에 관해 협의하였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활동가들은 “태평양전쟁에서 일제가 패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므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일제히 봉기하면 조국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동화정책(同化政策)은 민족의식을 말살하는 것이므로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하였다. 아울러 한국인까지 전쟁에 동원하려는 징병제를 독립운동에 이용할 방도를 찾았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모임을 갖고 서로 민족의식을 함양하며 무력에 의한 독립 봉기의 시기 등을 협의하였다. 당시 한민족의 진정한 행복은 ‘한국 독립’에 있음을 알고 일본이 전쟁에서 반드시 패망한다고 믿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독립 궐기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1944년 6월 3일 검거되었다. 8월 25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감옥에서 옥고를 겪던 중 8·15 광복을 맞아 출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김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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