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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조

高奉朝

1920. 9. 11 ~ 1963.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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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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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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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흥아연구회
  • · 계림동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계림동지회 비밀결사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920년 9월 11일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 성산면(城山面,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城山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정길(高丁吉)이며, 본관은 제주이다. 이명은 고산삼조(高山森造)이다. 1934년 성산서공립보통학교(현 동남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친이 거주하는 오사카(大阪)로 도항하였다. 이듬해 3월 오사카 심상소학교 고등과에서 1년간 수학하였다. 4월에는 오사카 인근 후세시(布施市) 성동(城東)상업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하여 3년간 수학하였다. 20세가 되던 1940년 4월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특과(特科)에 야간생으로 입학하였다. 학교에 적을 두는 한편 오사카 소재 금성제작소(金城製作所)에 취업하였다. 이 회사는 비밀결사 활동을 같이하는 김봉각(金奉珏)의 매형이 경영하던 곳이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김봉각·김병목(金丙穆)과 생활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였다. “한국 청년이 갈 길은 다만 하나뿐이다.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헌신할 길 뿐이다”라는 김봉각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여 민족 문제를 중심으로 담론하였다. 이때 강금종(姜金鍾)·한만숙(韓萬淑) 등의 동지를 규합하였으며, 그해 5월 흥아연구회(興亞硏究會)를 조직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일제의 전쟁이 미국 등 연합국과 결전으로 치달리자 일본 국내 정세는 더욱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변화를 감지하고 김봉각 등과 함께 독립운동의 중핵적 모체를 결성할 목적으로 조직을 더 확대 강화하려고 흥아연구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5월 26일 한인 비밀결사인 계림동지회(鷄林同志會)를 결성하였다. 계림동지회는 모두 20대 청년들로 구성되었으며, 제주도 출신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김봉각은 조천면 신흥리, 강금종은 삼양리, 부임전(夫林銓)과 한만숙은 조천리 출신이었다. 같은 고향 출신 사람들이 모여 서로 친화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주요한 직종은 회사의 직공이나 신문 배달원 등이었다. 검거되기 전까지 신문 배달을 하고 있었다. 회원들은 분야별로 업무를 분담하였으며,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 일을 맡았다. 행동 방침을 정하고 항일 민족운동을 강화하던 중 1941년 2월 25일 여러 동지와 함께 일제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듬해 1942년 11월 18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으므로 출옥하여야 하나, 일제가 출옥 후의 조직 활동을 막기 위하여 다시 1년 8개월 23일간 형무소에 가둬두었다. 1963년 10월 8일 사망하기 전까지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東成區) 오이마자토(大今里) 혼마치(本町)에서 살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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