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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원

金圭元

1925. 1. 8 ~ 2002.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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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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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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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3) 1925년 1월 8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기장면(機張面) 동부리(東部里, 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43년 일본 아마가사키(尼崎)에 있는 간사이학원고등상업학교(關西學院高等商業學校)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일본인들의 민족적인 차별과 멸시, 재일 한국인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면서 항일 의식과 더불어 점차 민족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1943년 6월경부터 항일운동에 헌신할 한국인 학생들과 결의한 후 지식 계층의 민족의식 고취와 단결을 호소할 목적으로 국내에 편지를 보냈다. 조선총독부 총무국 문서과에 근무하는 친구 서원수(徐元洙)에게 “나는 일본에서 한국 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자네도 이에 협력하기 바란다”라는 서신을 보냈다. 방학을 이용하여 같은 해 8월에는 귀국하여 직접 서원수를 만나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부산 해운대에서 철도원으로 근무하던 친구와 일본 아마가사키에 거주하는 친구에게도 서신을 보냈다. 주요 내용은 “한국 동포의 구제를 위하여 한국 청년은 끝까지 노력하자. 우리 민족의 행복은 독립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니 우리 청년들은 독립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는 것으로, 독립 쟁취만이 한국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로 인식하고 행동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처럼 국내외 지인들에게 서신을 보내는 방법으로 항일 의식과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일제 경찰에 활동이 발각되어 1943년 10월 28일 효고현(兵庫縣) 가와니시(川西)의 가와니시항공회사 작업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약 1년간 혹독한 고문과 심문이 이어졌다. 이듬해 9월 11일 고베(神戶)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풀려날 때까지 1년 3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광복 이후 귀국하여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 교수, 대한중석주식회사 전무이사, 포항제철(浦項製鐵) 상무이사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김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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