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종열
郭鍾烈1899. 1. 15 ~ 1929. 6.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교토유학생학우회
- · 신간회 교토지회
- · 조선공산당 일본총국 서남 야체이카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7)
관련 사건
- · 경성여자청년동맹 추계 강좌 금지
- · 조선공산당 일본총국 서남 야체이카 검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7) 1899년 1월 15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근남면(近南面) 성산동(城山洞, 현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으로는 곽학이(郭學伊)를 사용하였다. 20대에 일본 교토(京都)로 유학하였다. 이곳에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에 참가하였다. 1926년 교토유학생학우회(京都留學生學友會)의 기관지 『학조(學潮)』 발간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6월 25일에는 신간회(新幹會) 교토지회(京都支會)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 교토에서 활동하다가 1927년 7월 2일 신간회 교토지회장 전혁(全赫)의 명에 따라 한국으로 옮겨 활동을 전개하였다. 주로 서울을 비롯하여 지방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강연과 조선공산당사건 공판 진행 등에 관한 정황을 시찰하는 활동이었다. 첫 강연은 8월 20일 전남 영광군(靈光郡) 법성포(法聖浦)였고, 주제는 사회문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9월 13일 서울에서 당시 교토지회 간부 송을수(宋乙秀)와 함께 공산당사건 공판을 방청하였다. 9월 24일 자로 교토 성호원국(聖護院局) 소인이 있는 교토 신간회지회의 공산당사건 공판에 대한 항의문을 발송하였다. 항의문은 다나카(田中) 수상·사이토(齋藤) 총독·시이모토(失本) 재판장 앞으로 발송하였다. 발송자는 신간회 교토지회 재교토조선인합동조합 외 일 단체라고 기명하였다. 한국에서 강연 활동을 계속 시도하였다. 10월 경성여자청년동맹(京城女子靑年同盟)이 주최하는 추계 강좌에 연사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찰 당국의 강연 금지로 무산되었다. 경성여자청년동맹은 23일부터 28일까지 매일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부인 문제」(이현향, 이덕권), 「사회진화론」(박형병), 「방향 전환과 청년운동」(도정호) 등에 대하여 다룰 예정이었다. 「강독서법(講讀書法)」 강좌를 맡았는데 언뜻 봐서는 주제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사회문제와 연관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강사진과 주제들에 대하여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는 그 목적이 ‘불온한’ 주의 선전 강좌라는 빌미로 강좌 자체를 금지하였다. 한국에서 활동이 여의치 않자 일본 교토로 돌아가서 1928년 6월에 조선공산당 일본총국 서남(西南) 야체이카 부책임자로 활동하였다. 당시 일본의 경제 불황은 사회의 불안 요소를 크게 증폭시켰으며, 일본에서도 경찰의 이른바 치안유지를 위한 감시는 더욱 철저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독립운동가를 검거하기 위하여 더 촘촘한 조사망을 만들었다. 그해 10월까지도 일본 경찰의 검거를 피하여 이리저리 피신하였으나, 결국 이듬해 1929년 피신 도중에 사망하였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발간한 『국외 용의 조선인명부』에는 제4차 공산당사건 관계로 도주 중인 자라고 기재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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