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복
金圭福1905. 4. 5 ~ 1977. 3.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적색독서회
- · 의성체육회
- · 의성노동친목계
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의성적화사건
- · 의성스포츠사건
- · 의성공산당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6) 1905년 4월 5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의성면(義城面) 도서동(道西洞)에서 태어났다. 김규만(金圭晩)이라는 이명이 있다. 1922년 경성사립중앙고등보통학교(京城私立中央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였다. 1923년 2학년 재학 중 학업을 중단하고 의성군으로 내려가 곡물상과 양돈업을 경영하였다. 1926년 의성에서 경북의성청년회 부흥 운동에 참여하였다. 1932년 10월 10일 경성관립공업전습소(京城官立工業傳習所)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구공립보통학교(大邱公立普通學校)를 중도 퇴학한 오기수(吳騏洙)·오병수(吳丙洙)와 만나서 적색독서회(赤色讀書會)를 조직하였다. 적색독서회는 비밀결사였으며 목적은 일본 제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사유재산을 부인하는 제도 수립에 있었다. 적색독서회는 지도 및 조직부·청년부·농민부로 구성되었다. 농민부 책임자가 되었고, 지도 및 조직부를 담당한 오기수, 청년부를 담당한 오병수와 함께 조직을 운영하였다. 10월 28일경 독서회 회원 김진봉(金鎭鳳)과 함께 독립운동 방침에 대해 협의하였다. 나아가 오병수와 의성체육회(義城體育會)의 성격을 사회주의 단체로 탈바꿈하는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독서회 회원 김두칠(金斗七)·문소준(文小俊)으로 하여금 의성노동친목계(義城勞動親睦契)에 가담하여 전통적 친목단체의 성향을 독립운동 단체로 변화시키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오병수와 함께 사회주의에 대해 연구하는 한편, 관공서의 소사(小使)와 의성면 청년들을 규합하여 사회주의의 이념 보급과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33년 1월 1일 독서회원 문소준·오목순(吳木順)과 함께 사회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의성노동친목계를 다시 조직하였다. 8월 20일 오병수의 집에서 의성체육회 성격 변화를 다시금 시도하였으며, 8월 31일 체육회의 정기총회를 열어 구(舊) 임원을 독서회 회원으로 교체하였고, 동회의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적색독서회의 목적 달성을 위해 매달 1회씩 모임을 가지며 독립운동 방략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연구를 심화하였다. 적색독서회와 의성체육회에서의 활동은 일본 경찰들의 탐지로 인해 더 지속할 수 없었다. 1933년 10월경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던 중 의성공산당사건과 관련되어 1933년 12월 4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4년 5월 26일 예심공판에 부친다는 판결에 따라 1934년 10월 2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미결구류일수 180일 본형 산입) 형을 받고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1935년 7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무죄를 선고받기까지 약 22개월 동안 옥살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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