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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조

金德祚

1914. 4. 30 ~ 1947.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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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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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梁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양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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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4) 1914년 4월 30일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상북면(上北面) 신전리(新田里)에서 태어났다. 1932년 4월 하순경 김시학(金始學)·성상호(成相鎬) 등과 함께 부산에서 5월 1일 메이데이를 기하여 노동자들의 시위 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준비의 일환으로 같은 해 4월 27일 부산 범일동(凡一洞)에 있는 부산불교학원(釜山佛敎學園)의 등사판을 절취하여 두 종류의 격문 300매를 인쇄하였다. 같은 해 4월 30일 인쇄한 격문을 범일동 일대의 공장지대에 배포하여 노동자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1930년대 전반기 항일 대중운동은 세계대공황기를 거치면서 1920년대에 성장한 노동자·농민의 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주로 사회주의 계열을 중심으로 한 혁명적 대중조직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931년 9월 일제의 만주침략을 계기로 이 운동은 반제(反帝)·반전(反戰) 운동과 적극적으로 결합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행사인 ‘메이데이 기념투쟁’은 해마다 시행되어 노동자 대중을 상대로 반제·반전을 선전하고 조직화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특히 1932년은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후 처음으로 맞는 메이데이였다. 따라서 이를 계기로 당시 전국 곳곳에서는 비밀리에 항일 격문을 배포하고 시위 운동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때문에 당시 일제 경찰은 이 운동을 탄압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동료들과 함께 부산에서 전개한 활동 역시 이러한 ‘메이데이 기념투쟁’의 일환으로서, 이를 계기로 일제의 침략성을 폭로 선전하여 적극적인 반제 항일운동을 일으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경계 중이던 형사대에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같은 해 5월 10일 취조를 마치고 부산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예심을 마치고 같은 해 8월 1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절도, 출판법 위반,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검거된 성상호 역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며 김시학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풀려났다. 이들의 검거 사건은 처음에는 그 즈음 일어난 부산적색노동조합(釜山赤色勞動組合)의 격문 배포 사건과 같은 맥락에서 취급되었으나, 추후 근거가 없다고 하여 이들 3명만 별도로 재판을 받았다. 검거 당시 10대 후반의 나이라서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살이하였으며, 1934년 2월 12일에 석방되었다. 출옥 후 투옥 생활에서 얻은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1947년 11월 18일 끝내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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