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원
康相元187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자신회(自新會)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오적암살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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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1872년경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현 충청남도 금산군) 남서면(南西面) 입석리(立石里)에서 태어났다. 양반 출신으로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을사늑약(乙巳勒約) 체결에 반대하여 호남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참가하였다. 1907년 2월 나철(羅喆)·오기호(吳基鎬)는 을사늑약에 찬성한 이근택(李根澤)·이지용(李址鎔)·박제순(朴齊純)·권중현(權重顯)·이완용(李完用) 등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처단하려고 자신회(自新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부인들의 비녀를 팔고 이광수(李光秀)·이용태(李容兌)·정인국(鄭寅國)·윤주찬(尹柱瓚) 등에게 자금을 모집하여 거사에 사용할 권총 50정을 구입하는 한편, 지방에 사람을 파견하여 의병 출신을 중심으로 거사에 참여할 결사대를 모집하였다. 을사오적을 처단할 결사대 모집을 위해 파견된 최익현 의병부대 출신 박대하(朴大夏)의 권유에 따라 서울로 왔다. 책임자 이홍래(李鴻來)의 지휘를 받아 황주사(黃主事)·지참봉(池參奉)·이만장봉(李萬丈峰) 등과 함께 군부대신(軍部大臣) 권중현을 처단할 임무를 맡았다. 당초 거사는 1907년 2월 13일로 예정되었으나 준비가 지연되어 3월 25일로 연기되었다. 3월 25일 오전 10시 권총과 ‘동맹서(同盟書)’, ‘참간장(斬奸狀)’ 등을 지참하고 이홍래의 지휘하에 황주사·지참봉·이만장봉 등과 서울 사동(寺洞) 길목에서 입궐하는 권중현을 기다렸다. 인력거를 탄 권중현이 일본군 6~7인의 경호를 받으며 나타나자 이홍래가 그 앞을 가로막고 “역적 놈아 네 죄를 아느냐”라고 꾸짖으면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강상원도 권총을 들어 한 발은 권중현을 향해, 또 한 발은 경호하던 일본군에게 발사하였으나 모두 명중되지 못하였다. 놀란 권중현이 민가로 도주하여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같은 해 7월 3일 평리원(平理院)에서 내란죄로 유형(流刑) 10년을 선고받고 전남 지도군(智島郡)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가 같은 해 12월 18일 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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