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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일

權奇鎰

1886. 10. 5 ~ 1920.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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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권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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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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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경학사
  • · 부민단
  • · 한족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6년 10월 5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남후면(南後面) 검암동(儉岩洞)에서 아버지 성함(聖涵) 권수도(權洙道)와 어머니 의성 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공서(公瑞), 호는 추산(秋山)이다. 첫 이름이 인술(麟述)이고, 본명이 혁린(赫麟)이다. 만주 망명 이후에는 기일(奇鎰)을 주로 사용하였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열여섯 살에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조부 권헌봉(權憲鳳)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하였다.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맞이하였으므로 아래로 이복동생 3형제가 있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이상룡(李相龍, 1858~ 1932)·김대락(金大洛, 1845~1914)·김동삼(金東三, 1878~ 1937)·유인식(柳寅植, 1865~1928) 등이 만주로 망명하자, 1912년 3월 조부모를 남겨둔 채 모두 9명의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지린성(吉林省) 퉁화현(通化縣) 하니허(哈泥河)에 정착하여 경학사(耕學社)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참여하였다. 1912년 이상룡·여준(呂準, 1862~1932) 등이 조직한 교육회(敎育會)에 참여하여 경리와 재무 등을 맡아보았다. 이때 함께 활동하던 인물은 이상룡을 비롯하여 이청천(李靑天)·윤세복(尹世復, 1881~1960)·김창환(金昌煥)·윤기섭(尹琦燮, 1887~1959)·최명수(崔明洙, 1881~1951) 등이다. 1912년 결성된 부민단(扶民團)에 참여하였다. 부민단은 단장 허혁(許爀), 부단장 김동삼 등이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해 조직한 자치기관으로 하니허에 그 본부를 두고 있었다. 부민단의 재정과 외교를 담당하여 한인 동포들의 안정적인 정착에 힘을 기울였으며, 부민단의 외교부원(外交部員)으로 남만주 각처를 순회하며 연락을 담당하였다. 1917년 12월 국내에서 퉁화현으로 들어오는 독립운동 자금을 수령하기 위해 갔다가 하이룽현(海龍縣) 주재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1918년 3월 29일 일본 영사관에서 탈출하였다. 1919년 4월 부민단을 확대 개편하여 결성한 한족회(韓族會)에 참여하였다. 한족회는 독립운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류허(柳河)·퉁화(通化)·싱징(興京)·환런(桓仁)·지안(集安) 등지의 이탁(李鐸)·김동삼·양규열(梁圭烈)·이진산(李震山)·최명수·윤기섭 등이 결성하였다. 한족회의 구정(區正)과 교육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동포들의 생활 안정과 교육을 통해 독립 전쟁에 필요한 인물로 육성하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1919년 11월 한족회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로 확대·개편되자 외무 담당·어사부장(御史部長)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0년 5월 서로군정서와 신흥무관학교의 비밀 서류를 상하이(上海)로 옮기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그해 8월 15일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신흥무관학교 옆 수수밭으로 끌려가 전신을 총검에 찔려 절명·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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