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영
姜壽永1906. 5. 19 ~ 1971. 7.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진주청년회
- · 4257단
- · 진주사회운동단체협의회
- · 진주청년동맹
- · 경남청년연맹
- · 조선청년총동맹
- · 진주농민조합
- · 동아일보 진주지국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0) 1906년 5월 19일 경상남도 진주군(晉州郡) 도동면(道洞面) 옥봉리(玉峰里, 현 진주시 옥봉동)에서 태어났다. 1927년 진주청년회에 가입하였다. 특히 축구에 관심이 많아 축구를 통한 체력 향상이 애국·애족이라는 신조를 품고 있었다. 이에 4257단이라는 축구단을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3월 진주 지역 사회단체 대표들과 사회운동을 통일하기 위하여 진주사회운동단체협의회를 조직하면서 노동청년회·여자청년회·상업청년회·형평사(衡平社)·형평청년회(衡平靑年會)·4257단·양화직공조합(洋靴職工組合)·배달동맹(配達同盟) 등의 단체가 통합하는 데 기여하였다. 1928년 1월 진주청년회의 조직을 진주청년동맹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진주청년동맹 준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동년 2월 19일 진주 지역의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겸하던 진주노동공제회가 노동과 농민을 분리하면서 해체되고 진주군농민연맹이 창립할 때, 쟁의부 소속으로 참가하였다. 동년 3월 7일 진주청년동맹회관에서 개최된 진주청년웅변대회 개회사를 맡으며 행사를 주도하고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28년 3월 경남청년연맹 제1회 중앙위원회에서 서무부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28년 4월 29일 경남청년연맹 정기대회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4월 30일 경남청년연맹 제1회 집행위원회에서 선전부장으로 선출되면서 경남 지역 청년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대회 직후 경상남도 경찰부의 기타무라(北村) 경부와 진주경찰서 형사들에게 진주청년동맹회관, 『조선일보』 진주지국 최돈(崔敦)·김기태(金基泰) 등과 함께 자택을 압수 수색당한 다음 체포되었다. 동맹대회 문건이 불온하다고 하여 이른바 출판법 위반이라는 이유였으며, 5월 15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담당 검사 야나기하라(柳原)는 심리 후 진주형무소에 수감시켰다. 1928년 6월 2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대구복심법원에서 항소 취하하여 1929년 2월 23일 부산형무소에서 만기 출옥하였다. 출옥 후 1929년 3월 11일 『동아일보』 진주지국 기자 이술(李述)이 사임하자 후임 기자로 임명되었고, 진주청년동맹 위원장으로 1929년 3월 17일 선출되었으며, 4월 12일 조선청년총동맹 간친회에서 조선청년총동맹 준비위원회 준비위원이 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1931년 진주 지역이 흉작이었음에도 지주들이 고율의 소작료를 요구하자, 진주농민조합 집행위원으로서 ‘지주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흉년임에도 높은 소작율을 요구하면 소작인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항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경고문을 지주에게 발송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