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헌
金奎憲1886. 1. 9 ~ 1970. 8.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강년의진
- · 의용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중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6년 1월 9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서후면(西後面) 성곡동(城谷洞)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치방(致邦), 호는 속은(俗隱)이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현손이다. 1921년 당시 상주군(尙州郡) 화북면(化北面) 상오리(上五里)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후에는 안동군 서후면 금계동(金溪洞)에 적을 둔 것으로 확인된다. 금계동은 성곡동과 인접한 마을로 의성 김씨 학봉 종택이 있는 곳이다. 의병장 김흥락(金興洛), 파리장서의거에 참여한 김양모(金瀁模), 함께 활동한 의용단원 김용환(金龍煥) 등이 안동 금계마을 출신으로 같은 문중 사람이다. 1906년부터 이강년이 이끄는 의병부대에 2년 동안 참가하였다. 1921년부터 의용단(義勇團) 단원으로 2년 동안 서로군정서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1921년 을사늑약을 반대하다 옥사한 이건석(李健奭)의 아들 이응수(李應洙)의 권유로 의용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2년 1월에는 이응수·김찬규(金燦奎)와 함께 김병동(金秉東)에게 의용단 가입을 권하였다. 1922년 1월부터 경북 예천군 용궁 시장의 손용준(孫龍俊) 자택에서 이응수와 함께 독립자금 모금 계획을 논의하는 모임을 여러 차례 가졌다. 또한, 1922년 4월 경북 지역 부호인 안동군 도산면 옥계동 이중면(李中冕), 영덕군 영해면 원구동(元邱洞) 박재인(朴載寅)·박세찬(朴世燦)에게 군자금 모금을 시도하였다. 의용단 조직이 일본 경찰에 노출되어 1922년 11월 말에 체포되었다. 192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1924년 1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1년(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산입) 2심 공소 취하를 선고받아 옥고를 겪었다. 1926년 금계동에서 발생한 풍기문란사건 등과 관련하여 이를 조사하던 순사와 마을 주민들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다수의 마을 주민이 체포되었는데 여기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1926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소요 혐의로 징역 10개월 형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6년 9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공무집행방해로 징역 10개월 형을 받아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지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