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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金基石

1904. 3. 29 ~ 1921.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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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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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덕원(德源)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덕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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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02)

관련 사건

  • · 원산만세운동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2) 1904년 3월 29일 함경남도 덕원군(德源郡) 적전면(赤田面) 신풍리(新豊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원산부(元山府) 상동(上洞)으로 이주하였다. 1920년 9월 당시 17세로 일심단(一心團)이 주도한 원산 만세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일심단은 원산청년회(元山靑年會) 회원 중 일부가 참여하여 조직된 비밀결사로 1920년 8월 중순경 결성되었다. 단원은 약 20명으로 알려졌고, 단장을 김종한(金宗翰)이 맡았다. 시위를 주도한 최종현(崔鍾鉉)은 이미 9월 16일 단원들에게 장촌동(場村洞)에서 만세 시위를 거행할 뜻을 전달하였으나 경찰의 경계가 심하여 계획은 수포가 되었다. 9월 22일 밤 최종현 등 단원들이 다시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9월 23일 밤 최종빈 등 일심단원들이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장촌동 장춘교(長春橋) 부근에서 최종빈(崔鐘濱)과 김연희(金演熙)가 한양가(漢陽歌)를 부르면서 행동에 돌입하였다. 그러자 주변의 주민들이 호응하며 대중 시위로 확산되었다. 남산 부근 극장인 동락좌(同樂座)에 군중이 모여들자 최종현이 파출소와 일본인 상점을 공격하자고 하며 시위 대열을 지휘하였다. 그는 당시 최문환(崔文煥)·서원태(徐元泰)·남상빈(南相斌) 등과 함께 있다가 시위 대열에 가담하였다. 동락좌 부근에서 모인 사람들이 극장 앞을 지나 시가지로 나아가자 시위대를 따라 나섰다. 시위대열이 북촌동경찰관파출소 앞으로 쇄도해가자 행동을 함께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연호하였다. 이날 시위로 북촌동파출소가 파괴되었고 조선식산은행 원산지점과 일본인 상점 등이 공격받았다.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예심에 회부되었다. 1920년 12월 2일 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에서 열린 예심에서 “한국 독립을 기하고 정치 변혁을 꾀하였다”라는 혐의가 인정되어 정식 재판으로 넘겨졌다. 1920년 12월 23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조사 중의 가혹한 고문으로 인해 출옥 후 3개월여 만인 1921년 4월 3일, 옥고의 여독(餘毒)으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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