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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호

姜相湖

1919. 2. 6 ~ 1945.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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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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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順天)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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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919년 2월 6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현 순천시) 해룡면(海龍面) 상삼리(上三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강상호(姜相鎬)를 사용했다. 순천 매산보통학교의 축구부에서 활동하였으며 고창중학교(高敞中學校)를 졸업하였다. 고창중학교 시절부터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갖고 동지를 규합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1940년 고창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요코하마전문학교(橫濱專門學校, 현 가나가와대학(神奈川大學)) 상과(商科)에 입학하였다. 1941년 6월경 전라북도 고창(高敞) 출신인 주오대학(中央大學)의 배종윤(裵宗潤), 릿쿄대학(立敎大學) 예과의 원용학(元容鶴)과 함께 창씨개명제도 및 한국어 폐지 등에 대해 토론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완전히 한국을 무시한 비인도적 식민지 정책으로 규정하고, 머지않은 장래에 동포의 원한을 풀 수 있는 날이 도래할 것에 대비하여 단결을 굳게 해야 한다고 다짐하였다. 1941년 7월경 회합에서는 장차 미일전쟁이 발발하면 도쿄(東京) 시내에 커다란 혼란이 일어날 것이고, 이때는 독립을 위해 봉기해야 할 절호의 기회이므로 이에 대비하여 한국인 유학생의 단결을 도모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국 문화를 말살하려는 일제 식민 통치에 끝까지 저항하기 위한 민족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벌이다가 발각되어 10월 14일 배종윤·원용학과 함께 체포되었다. 오랫동안 신문을 받으며 고초를 겪다가, 1942년 9월 28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학교를 졸업한 후, 같은 학교 후배들을 동지로 포섭하여 일제의 패망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1943년 2월부터 동년 8월까지 10여 차례 모임을 갖고 일제의 패망을 준비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다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44년 9월 19일 요코하마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혹독한 고문으로 1945년 5월 11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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