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근
權德根1897. 9. 22 ~ 1989. 9.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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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9월 22일 서울 관훈동(寬訓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뒤 만주로 건너가 1920년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서간도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한말 의병 계열의 망명 인사들이 중심이 된 보약사·향약·농무계 등의 한인 자치 단체를 통합 확대하여 결성된 독립군단이다. 대한독립단은 박장호(朴長浩)를 도총재로 한 중앙본부를 두고 만주와 국내에는 지부와 지단을 설치하였다. 만주의 경우 100호 이상의 한인 사회를 구(區)로 정하여 구관(區管)을 두고, 10구마다 단장을 임명하고 그 아래 부단장·총무·외교장·통신장 등의 간부를 두었다. 단세를 만주와 국내로 확대해가던 대한독립단은 1919년 말에 단기(檀紀) 내지 대한제국의 연호 사용을 주장하는 기원독립단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호를 사용하자는 민국독립단으로 양분되었다. 1920년대 초 민국독립단은 대한청년단연합회·의용단 등과 연합하여 대한광복군사령부(대한광복군총영)를 결성하였고, 기원독립단은 계속 대한독립단을 유지하며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 제1중대 제3소대 부교(副校)가 되어, 1920년 2월 퉁화현(通化縣)에서 친일 밀정을 처단하고, 7월에는 평북 삭주군에 들어와 밀정 주영신(朱永信)을 살해하고, 10월에는 관뎬현(寬甸縣) 발재구(發財溝)에서 일본인을 살해하는 등 친일 밀정 처단과 군자금 모집 등의 항일 활동을 하였다. 1922년 3월에는 대한독립단 관서(寬西) 지단에서 활동하였다. 관뎬현 모전대(毛甸大) 대청구(大淸溝)의 조치산(趙致山) 집에 설치된 관서지단은 관서총관 김중량(金仲亮), 재무부장 박초식(朴初植), 서기 이학수(李學洙), 통신원 명석호(明石鎬) 외 단원 7명이 중심이 되어 밀정 처단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관뎬현 내에서 대한독립단의 밀정 처단과 군자금 모집 등의 항일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자 그해 3월 25일 일제는 안동(安東, 현 단둥)경찰서 일본 경찰 11명과 중국 관헌 3명으로 공동수사대를 편성하고 3월 28일 관서지단을 습격하였다. 총관 김중량은 외출 중이어서 일본 수사대의 급습을 피할 수 있었고 단원 9명도 도주하였으나 나머지 단원은 일본 수사대에 저항하다가 조치산 외 3명은 즉사하였다. 이때 일본인 형사 요시모토(吉本)에게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4년 12월 30일 만기 출옥하였다. 한편, 1925년에 정의부 사령부 경리로 활동한 권덕근(權德根)이 있으나 동일인인지 여부는 현재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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