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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준

金基俊

188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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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기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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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靈光)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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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안규홍 의진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3) 1880년경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 진량면(陳良面) 법성리(法聖里)에서 태어났다. 1910년 당시 31세로 보성군(寶城郡) 복내면(福內面) 당촌리(堂村里)에 거주하였다. 판결문에 ‘재인(才人)’이라고 되어 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강제해산 이후 전국에서 일어난 정미의병(丁未義兵) 항쟁 시기에 동향의 의병장 안규홍(安圭洪)이 조직한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안규홍 부대는 1908년 2월 일본 육군 소속 제8중대가 순천(順天)에서 보성으로 진입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파청(巴靑)에서 매복 기습에 성공하여 군관 미도(米戶)와 히라이(平井)를 비롯한 병력 다수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같은 해 8월 24일에는 진산(眞山)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상대로 또 한 차례의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9년 9월 개시된 일제의 ‘남한대토벌’ 작전으로 안규홍을 비롯한 많은 의병이 피살되거나 체포되었다. 1909년 6월 2일 안규홍 의병부대에 포군(砲軍)으로 합류하여 총기로 무장한 동료 의병 수십 명과 함께 같은 해 9월까지 전남 보성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벌였다. 그해 10월경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보성군 순사주재소에서 심문받았다. 1909년 10월 30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통감부 검사 오무라 오시로(大村大代)의 입회하에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하였으나 1910년 2월 1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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