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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환

姜吉煥

미상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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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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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출생일과 가계, 출신지는 알 수 없다. 의병장 김태원(金泰元, 혹은 김준(金準))이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일으킨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기삼연(奇參衍)은 김태원 등과 함께 1907년 10월에 전라남도 장성(長城) 수연산(隨緣山) 석수암(石水庵)에서 결성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였다. 호남창의회맹소의 선봉장 김태원 의병부대의 포수로서 활동하였다. 김태원 의병부대는 1907년 10월 22일 전후 전라북도 고창(高敞)의 문수사(文殊寺)전투를 시작으로 무장주재소, 고창읍성 등을 차례로 공격하였다. 이후 김태원은 전남 영광(靈光)·나주(羅州)·함평(咸平)·무안(務安)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일본군 및 순사를 사살하는 등 눈부신 활동을 벌였다. 1908년 2월 2일 음력 설날 아침이었다. 김태원 부대는 무등산 자락인 담양 무동촌(茂洞村, 현 담양군 남면 무동리)에서 설 명절을 지내는 중이었다. 이때 일본군 광주수비대를 주력으로 하는 군경 토벌대가 나타났다. 김태원 의병장은 동요하는 의병들에게 “대장부 남아가 죽을지언정 불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라며 요격을 준비하였다. 김태원은 의병들을 돌담 뒤에 잠복하게 한 후 명령을 기다리게 하였다. 이어 그를 비롯한 조덕관(趙德寬) 등 포수들에게 일시에 총을 쏘게 했다. 포수들의 총에 일본군 수비대 가와미쓰(川滿布建) 조장 및 하야시(林) 상등병이 사살되었고, 기타 2명의 일본군이 부상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포수 조덕관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강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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