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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윤

金洛允

187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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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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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단천(端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단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 · 대한독립군비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1) 1876년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낙윤(金絡允)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만주로 이주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주 이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등에 가입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또한 1919년 3월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바이현(長白縣)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당시 지린성을 비롯한 만주 일대에는 일본의 탄압을 피하여 망명해 온 의병들이 독립단, 대한독립군비단 등의 단체를 설립하고 무장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1920년 1월 독립단의 별동대인 창여상회(昌與商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1921년에는 이동백(李東白)·이은향(李殷鄕)·이태걸(李泰杰)·윤덕보(尹德甫) 등이 조직한 대한독립군비단에 가입하였고, 창바이지단 경호장(警護長)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1월에는 대한독립군비단 총단 제4지단 소속 재무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썼다. 이후에도 창바이현에서 활동을 지속하였다. 1922년 김학인(金學仁) 외 4명이 독립운동 혐의로 창바이현 관헌에 붙잡히자 다른 동지들과 함께 신원보증을 섰으며, 김학인 등이 무사히 탈출하자 그들을 대신하여 옥고를 겪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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