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현
金德賢1880. 6. 17 ~ 1920. 9.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북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3
- · 1운동
- · 청산리대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함경북도 회령(會寧) 출신으로 1880년 6월 17일에 태어났다. 이명은 김덕현(金德鉉)이다. 한학 교육을 받았고, 1910년 경술국치 이전까지 청진(淸津)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는 물상객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북간도 일대에서 은행가로 불릴 정도로 이재(理財)에 밝아 한인 사회 내의 모금과 재정 관리를 담당하였다. 특히 1908년 5월 24일 설립된 모현의숙(慕賢義塾)을 지원하는 모현의숙교육회 회장에 취임하여 대종교 계열의 민족교육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였다. 모현의숙교육회는 취지서를 통해 애국충군(愛國忠君)과 한인 동포의 처지 개선을 위한 기성세대의 각성과 청년교육 지원을 강조하였다. 1910년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자 만주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으로 망명하여 학성학교(學成學校)를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교장에 취임하여 재만 동포의 자녀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학성학교는 1911년 혹은 1912년에 4년제 소학교(小學校)로 개교하였고 1916년부터 2년제 고등과를 추가 개설하였으며, 교사(校舍)의 위치는 허룽현 사무사(四茂社) 송언시(松堰市)로 북간도 한인 100여 명의 성금을 모아 개교한 민족교육기관이다. 1913년에는 러시아 연해주(沿海州)로 이동하여 그해 9월 29일 개교한 대진학교 설립에 참여하고 학감에 취임하여 민족교육 활동을 지속하였다. 또한 1911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조직된 항일 독립운동 및 한인자치기관인 권업회(勸業會)에 1914년까지 정기적으로 성금을 의연하는 등 한인 공동체 사업에 적극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4월 26일경 북간도 허룽현 사무사 송언시에서 학성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3,000여 명의 군중을 동원하여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1919년 8월부터는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일명 북로군정서) 조직에 참여해 대한군정서 재무 및 검사국장, 그리고 손범철(孫範哲)·고평(高平) 등과 함께 군정회의원(軍政會議員)으로 활동하며 대한군정서를 북간도의 대표적인 독립군단으로 발전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1920년부터는 북로군정서 경신분국(警信分局) 통신원(通信員)으로 활동하며 최전선에서 독립군 활동을 이어갔다. 경신분국은 1920년 3월 2일 설치된 대한군정서의 지방조직으로 지방 각지의 경찰 업무와 대한군정서 중앙과 지방간의 긴밀한 연락체계의 구축을 담당하였다. 1920년 9월 청산리대첩에도 참가해 활약하다가 회령 근방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순섭⋮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