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
金道彦189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하얼빈 독립군자금 모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1892년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북만주(北滿洲)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가입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북만주의 통합 독립운동 단체인 신민부(新民府)의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청산리대첩(靑山里大捷) 후 소련의 연해주로 이동했던 독립군 중 일부는 북만주로 돌아와 진영을 구축하였다. 1925년 3월 김좌진(金佐鎭)·김혁(金爀)·조성환(曺成煥) 등 독립군 지휘관들은 이들 세력을 통합하여 신민부를 결성하였다. 이후 신민부는 남만주를 근거지로 한 참의(參議)·정의부(正義府) 등과 3부 시대를 열며, 재만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었다. 이 같은 신민부의 대원이 되어 1928년 2월 하얼빈 매매가(賣買街)에서 곡물상을 하는 부호 박태영(朴泰英)에게 군자금을 요구하였다. 박태영이 군자금 제공을 거부하고 반항하자 그를 처단하고 거금을 확보해 본부로 귀대하였다. 같은 해 가을에는 하얼빈 전가전(傳家甸)에서 고려의원을 경영하는 원장 조인원(趙寅元)을 찾아가 마찬가지로 독립군 자금을 요청하였다. 그 또한 자금 제공을 거절하고 일본 경찰에 연락을 취하려 하자 처단하고 거액을 획득해 본부로 귀대해 독립군 자금으로 납부하였다. 군자금 모금 활동은 해를 넘긴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1929년 2월 21일에는 하얼빈 부두구(埠頭區) 사도가(四道街)에 있는 일본인 아라이 신페이新井信平가 경영하는 동양약방(東洋藥房)으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주인인 아라이는 없어 그의 처 하마다(濱田)에게 돈을 내놓으라 요구했으나 듣지 않자 그녀를 죽이고 거액을 확보해 귀대하였다. 몇 번에 걸친 이 같은 활동은 결국 일제의 영사관 경찰에 포착되어 같은 해 2월 하순경 붙잡혔다. 이후 하얼빈에서 뤼순(旅順)감옥으로 이감되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일제의 관동청지방법원(關東廳地方法院)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29년 10월 1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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