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안
金鳳安1903. 8. 7 ~ 1977. 2.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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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903년 8월 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장성리(長城里)에서 출생하였다. 김봉안(金奉安)이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4월 1~2일 금마면 가산리(佳山里) 연극 공연장과 홍성시장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 운동은 서당의 훈장이던 민영갑(閔泳甲)과 약장수로 서울을 자주 왕래하여 그 정황에 밝은 이재만(李載萬)을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3월 1일 이후 서울의 만세 운동 상황을 파악한 민영갑은 이재만과 의논하여 만세 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을 동지로 확보하였다. 금마면에서는 4월 1일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임시 연극 공연장을 설치하고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들은 다수의 주민이 연극 공연 관람을 위해 모일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주민들에게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여 만세 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예정대로 4월 1일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연극 공연 중이던 오후 8시경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관람을 위해 모인 주민들에게 만세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다른 관객 수십 명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연극 공연장 시위는 금마면의 첫 번째 만세 시위였다. 이날의 만세 시위는 체포자 없이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금마면의 만세 시위가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만세 운동은 다음 날 홍성시장 시위로 확대되어 다시 일어났다. 시장에 나온 많은 수의 군중이 참여하면서 시위 규모는 수백 명으로 확대되었다. 가산리 연극 공연장 만세 시위의 중심인물인 민영갑, 이재만 등과 함께 4월 2일 홍성시장으로 나가 전날에 이어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불어난 군중과 함께 홍성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적극적으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4월 14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笞刑) 90도(度)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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