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봉추

金鳳樞

1892. 7. 27 ~ 1949. 6. 1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봉추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부산(釜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부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2년 7월 27일 경상남도 부산부(釜山府) 서구(西區) 충무동(忠武洞)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당시 주소는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전주면(全州面) 화원정(花園町)으로 재봉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전주의 3·1운동은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기독교와 천도교도가 중심이 되어 전개하였다. 이운영(李云泳)·강선칠(姜善七)·김병학(金炳學) 등과 함께 3월 13일 장날을 기하여 전주면(全州面) 서정(曙町) 공립 제2보통학교(第二普通學校) 부근에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사전에 이 계획을 눈치 챈 일제 경찰은 예비검속을 실시하여 일부 주동자를 체포하고, 각 학교에 임시 휴교령을 내리는 등 삼엄하게 경비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도가 중심이 되어, 신흥(新興)·기전(紀全)학교 학생을 동원하여 신흥학교 지하실에서 태극기와 선언서를 준비하였고, 천도교 측에서도 교구실에서 수천 매의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의 활동을 지속하였다. 아울러 각지의 교도에게 13일의 만세 운동 계획을 연락하여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13일 정오, 기독교도와 천도교도, 학생이 중심이 된 150여 명의 시위 군중이 공립 제2보통학교에 모인 후 대정정(大正町) 우체국 앞까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경찰과 우체국 앞에서 대치하여 승강이가 벌여졌다. 이때 시위 군중이 더욱 거세게 저항하자, 일제 측은 총검을 휘둘러 시위 군중을 강제로 해산하고, 주동인물을 붙잡았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8월 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해 10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