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부문

金富文

1887. 8. 13 ~ 1952. 7. 1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부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7년 8월 13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점곡면(點谷面) 송내동(松內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33세로 본적지에 거주하면서 송내동 교회의 집사로 활동하였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의성군의 만세 시위는 3월 12일 비안면에서 시작되어 23일 동안 총 7개 면에서 21차례 일어났다. 점곡면에서 만세 시위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3월 15일 안평면 대사동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난 직후부터이다. 18일 의성면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사촌동의 안동 김씨 집안 김태호(金太鎬)·김점득(金占得)·김수석(金壽錫)·김무호(金武鎬) 등은 이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같은 날 밤 9시경 김태호의 만세 선창으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18일 첫날에는 사촌동 앞길에 30~40명의 주민이 모여 밤 11시경까지 만세 시위를 진행하였다. 이튿날인 19일 아침에도 200여 명의 주민이 김태호 등의 주도하에 점곡면 주재소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이 소식을 들은 윤암동의 남승순(南勝淳)과 그의 아들 남규우(南圭佑)를 비롯한 영양 남씨들도 주민 23명과 함께 사촌동으로 향하였다. 밤 9시경이 되자 사촌동 거리에는 사촌동·서변동·윤암동·송내동의 주민 500여 명이 모이게 되었고, 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몰려갔다. 송내동 교회 김성규(金聖奎)·김수배(金壽培)·김호문(金好文)·김희문(金熹文) 등 또한 시위에 참여했는데, 이때 같은 교회 교인 김학배(金鶴培)의 권유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모두 김해 김씨였다. 이와 같이 점곡면 만세 시위는 김해 김씨 가문이 포함된 송내동 교회의 교인과 안동 김씨 및 영양 남씨 가문의 유림들이 힘을 합하여 일으킨 연합 시위 성격을 띠었다. 주민들은 20일 새벽 1시경이 되어서야 해산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5월 24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