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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후

金商厚

1869. 5. 11 ~ 1944.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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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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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光陽)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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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69년 5월 11일 전라남도 광양군(光陽郡) 옥룡면(玉龍面) 운평리(雲坪里) 상평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용여(用汝), 호는 금호(錦湖)이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19년 당시 50세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3일, 천도교 조직을 통해 광양군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고, 3월 27일 옥룡면의 유생 정성련(鄭星鍊)이 주도한 광양읍 장날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성련은 출동한 일제 경찰에 체포되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시위대 해산 이후 광양읍 장날인 4월 1일 오후에 인덕면(仁德面) 학생 김영호(金永鎬)와 박용수(朴瑢洙), 농민 김석용(金錫瑢) 등이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자 나이 많은 농민이지만 이날의 만세 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날 오후 5시경 장터에서 경계 중인 일본 헌병이 만세 시위에 참여한 사람을 신체검사하려 하자, 무고한 사람에게 신체검사를 행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또한 이날 귀가 도중 읍내 음식점에 들러 30여 명의 한국인에게 일본과 한국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과, 한국은 개국 이래 독특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므로 민족자결상 한국 독립을 주장하고 독립 만세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독립 만세 운동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66년 광양 지역 유지들이 광양읍 만세 운동을 기념하고자 ‘오의사삼일운동기념비(五義士三一運動記念碑)’를 세웠는데 오의사 중 일인으로 추대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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