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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률

金秉律

1870. 5. 1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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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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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이천(伊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이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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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용포면(龍浦面) 호암리(虎岩里)에서 태어났다. 이천군의 시위는 천도교인들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3일 천도교 이천교구장 이춘호(李春浩)는 천도교 평강교구에서 보낸 장선경(張善慶)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5매를 받았다. 그 후 이천면 탑리(塔里) 천도교회당에 모인 천도교인들에게 ‘한국 독립은 천도교 역사 60년간 줄곧 이루고자 한 소망이다. 이번 독립선언서의 발표로 목적하는 시기가 도래하였으니, 이를 각처에 널리 알리고 일치협력하여 독립을 부르짖자’라는 취지의 설교를 하였다. 이날 이춘호는 김형구(金瀅九)와 이경선(李京善)에게 독립선언서 15부를 전달하며 이천 군내에 배포하는 책임을 맡겼다. 이날 장두경(張斗京)과 함께 이춘구와 김형구에게 독립 만세 시위의 취지를 전해 듣고는 이천면 남대리(南大里)에 사는 천도교인 박필주(朴弼周)의 집에 가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였다. 장두경은 판교면(板橋面) 군지리(君至里)에 있는 이흥선(李興善) 집에서 천도교인들에게 시위 참여를 권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4월 4~5일 낙양면 지석리(支石里) 만세 시위를 촉발하였다. 1919년 3월 3일 평강 천도교구에서 이천 천도교구에 독립선언서 15매를 전달하면서 준비에 들어간 독립 만세 시위는 4월 4일에 낙양면 지석리(支石里)에 있는 시장에서 처음 일어났다. 지석리 시장은 강원도와 황해도의 접경 지역으로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지석리 시장의 시위는 김병하(金炳河)·김응제(金應濟)·김이순(金利淳)·이여종(李呂鍾)·이두영(李斗榮)·김혁근(金赫根) 등 천도교인들이 주도하였다. 천도교인들은 김응제의 집에서 태극기와 격문 등을 제작하며 시위를 준비하였다. 4월 4일 오후 3시 경에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자 5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호응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내락리(內洛里)와 지하리(支下里)의 주민이었다. 지석리 시장에서는 다음 날에도 60여 명이 모여 시위를 계속하였다. 새벽 5시경 시위대는 지하리(支下里)에 있는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돌을 던지며 만세를 불렀다. 결국 헌병 3명과 육탄전을 벌이다가 헌병이 쏜 총에 5명이 즉사하였다. 이 시위 계획과 관련하여 붙잡혀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하였다. 5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8개월 형을 선고하자 다시 상고하였으나,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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