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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金聖奎

1879. 5. 20 ~ 1936.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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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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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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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점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79년 5월 20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남후면(南後面) 상곡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경북 의성군(義城郡) 점곡면(點谷面) 송내동(松內洞)에 거주하였으며, 송내동 교회의 영수 역할을 하였다. 의성군의 만세 시위는 기독교인, 지방 유림, 학생 등이 주도하였다. 점곡면에서는 영양 남씨와 안동 김씨가 서로 혼반(婚班)으로 교류하고, 김해 김씨 가문이 송내동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기독교인과 지방 유림이 연대해 전개될 수 있었다. 3월 18일 의성면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점곡면에서도 만세 시위가 추진되었다. 김태호(金太鎬)·김위창(金渭昌)·김봉식(金鳳植)·김유경(金酉庚)·김기호(金基鎬)·김구종(金九鍾) 등은 밤 9시부터 11시까지 점곡면 사촌동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분위기는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사촌동에는 이른 아침부터 200여 명의 주민이 집결하였으며, 이 소식을 들은 윤암동의 남승순(南勝淳)과 그의 아들 남규우(南圭佑) 등이 합류하였다. 밤 9시경이 되자 사촌동 거리에는 사촌동·서변동·윤암동·송내동 등지의 주민 5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독립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 진입을 시도하였다. 이날 만세 시위에 같은 교회의 교인 김학배(金鶴培)의 권유를 받아 김수배(金壽培)·김부문(金富文)·김호문(金好文)·김희문(金熹文) 등의 교인과 함께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20일 새벽 1시경 해산하였다. 날이 밝자 경찰의 검거가 시작되었고 이때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4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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