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룡
金壽龍1901. 4. 20 ~ 1973. 6.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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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1년 4월 20일 경남 동래군(東萊郡) 기장면(機張面, 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校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서울에서 신문사에 다니다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이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인 기장으로 내려갔다. 독립선언서를 전해 받은 기장지역의 김도엽(金度燁)·권철암(權鐵巖)·구수암(具壽巖)·최기복(催基福)·이택규(李澤奎)·박공표(朴孔杓)·오기원(吳基元)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거사 일은 기장면 장날인 4월 5일로 잡았다. 3월 28일, 기장면사무소의 재무서기인 최창용(崔昌鎔)으로부터 면사무소의 등사기와 등사판용 원지 14매를 얻어서 옛 기장 장관청(將官廳)에서 400여 매의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다. 1919년 4월 5일 11시, 다른 주동자들과 함께 기장시장으로 가서 선언서를 군중에게 배부하고 독립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양심발원 인도적 자유민족(良心發原人道的自由民族)”, “조선독립만세”, “조선독립단”이라고 쓴 큰 깃발을 들고 나아가 100여 명의 시위 군중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준 뒤, 선두에 서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시위대 수가 점차 늘자 일제 경찰이 공포를 쏘며 위협하였으나 시위는 오후 5시까지 계속되었다. 다음 날인 4월 6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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