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홍
金晩洪1871. 1. 1 ~ 1956. 2.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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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71년 1월 1일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운시면(雲時面) 운하리(雲下里)에서 태어나 살았다. 1923년 8월 13일 중국 펑톈성(奉天省) 관뎬엔현(寬甸縣)에 근거를 둔 독립운동 단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의 대원인 아들 김익봉(金翊奉, 金翼鳳)으로부터 김흥렬(金興烈)·한서봉(韓瑞奉) 등 무장대원 12명이 압록강을 넘어와 운시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튿날 14일 밤 9시 30분에 인접 대평면(大平面) 음평동(陰平洞)의 현직 구장(區長)이면서 전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대원인 양학준(楊學俊) 등 현지 협조자 7명과 함께 통의부 대원들을 운시주재소 뒷산으로 인도하여 숨어있게 하였다. 이후 그곳에서 기회를 엿보던 대원들이 심야에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일본 경찰 오오세키(大關猪丸)를 사살하고, 장총 2정 및 순사복 외 물품 탈취 노획, 주재소 및 숙사 방화 소실, 대평면 사무소 습격 후 현금 30원 및 등사판 탈취 등의 성과를 거두며 전원 무사히 귀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안내와 편의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이 사실이 일본 경찰의 수사로 발각되어 동년 10월 19일 양학준·김병렬(金炳烈) 등 주민 7명과 함께 벽동경찰서에 붙잡혀가 엄혹한 취조를 받고 기소되었다. 1924년 1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방화·살인·강도 등의 죄목으로 징역 8년 형을 선고받았다.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동년 5월 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장기 옥고를 겪었다. 이후 행적은 알려진 것이 없다. 1956년 2월 2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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