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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金明秀

1893. 1. 20 ~ 1972.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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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명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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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保寧)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길림군정부(대한북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군자금모금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893년 1월 20일 충청남도 보령군(保寧郡) 청라면(靑蘿面) 장산리(長山里)에서 태어났다. 장성한 후에도 향리의 본가에서 거주하며 비석 조각업에 종사하였다. 중국 지린성(吉林省)의 독립운동기관인 ‘길림군정부(吉林軍政府)’(정식 명칭은 대한북로군정서(大韓北路軍政署))의 군무독판(軍務督辦) 겸 총사령관 김좌진(金佐鎭)의 비밀 연락책인 예산(禮山) 사람 김영진(金瑛鎭, 가명 송일헌(宋逸憲))이 청양(靑陽)의 조병채(趙炳彩)·윤상기(尹相起) 등 여러 동지와 함께 1920년부터 충남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들은 1921년 (음)3월 초순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부와 길림군정부 명의의 경고서(警告書) 및 납금명령서(納金命令書)를 제작해 줄 인판소(印版所)를 물색했는데, 그때 동향인 유기종(柳冀宗)을 통해 적임자로 소개되었다. 김영진이 의뢰한 대로 장산리 자기 집에서 인판과 나무도장 2개를 조각하여 갱지에 눌러 찍은 문서를 건네주어, 김영진이 부여군(扶餘郡) 남면(南面) 대송리(大松里) 최문기(崔文基)의 집으로 가서 출금을 요구하며 사용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동년 5월 2일에는 김영진과 청양 사람 이완백(李完伯)이 보령군 대천면(大川面) 화산리(花山里) 황오현(黃五顯)의 집으로 가서 권총을 내보이며 출금을 요구할 때 동행하여 부근 솔밭에서 주위를 경계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결국 김영진 등의 군자금모금 활동이 일제 경찰에 포착되어 수사가 개시됨에 따라 함께 붙잡혔다. 1922년 4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의 죄목으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불복 항소하였다. 동년 9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미결구류일수 100일 산입)이 선고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 1924년 1월 ‘칙령’에 의해 징역 2년 1월 24일로 감형된 후 만기 출옥하였다. 1972년 1월 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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