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金明浩189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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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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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6)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회령면(會寧面) 삼동(三洞) 출신이며, 1921년 당시 32세인 점으로 미루어 1890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대한군정서 모연대 대원으로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군정서는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그해 8월 만주 일대의 대종교도와 의병, 공교회원 등을 규합하여 조직한 독립군단이다. 성립 초기에는 북간도 각지에 5분단(分團) 70여 지단을 설치하여 군자금 모금과 무기 구입에 노력하였다. 대한군정서는 왕칭현(汪淸縣) 춘명향(春明鄕) 유수천(楡樹川)에 총본부 격인 총재부를, 춘명향 서대파구(西大坡溝)에 군사령부를 두었다. 무관학교인 사관연성소(士官練成所)를 설치하여 독립군 간부 양성에 노력하여 점차 북간도의 유력한 독립군단으로 발전하였다. 1920년 초 최고통솔자인 독판(督辦)은 서일(徐一), 모연국장은 계화(桂和), 재무 및 검사국장은 김덕현(金德賢), 군사교육국장은 김일(金一), 외교부장은 김병덕(金秉德), 의군단장은 허근(許瑾), 의용단장은 허재명(許在明)이었다. 1920년 2월경 함북 회령군 회령면 이동에서 곡물상을 하던 임태순(林泰淳)을 찾아가 독립운동 참여를 권유하고 함께 군자금 모금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대한군정서 모연대와 협의하여 회령의 자산가들인 김정균(金楨均)·김이래(金爾來)·노운서(盧雲瑞)·홍경화(洪卿和)·이동운(李東雲)·진홍진(陳鴻振) 등을 간도로 데려가 이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으기로 하였다. 모금한 군자금으로 간도에 토지를 매입하여 국내의 가난한 동포를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하고, 청년들을 모아 무관학교에 보내어 군사교육을 시키고자 하였다. 또 간도에 상점을 개설하여 국내 큰 상점과 연락하며 독립군에게 필요한 물품을 싼 가격에 공급할 계획이었다. 회령면 일동에 거주하는 김인순(金寅淳)에게 간도로 가서 이 계획을 대한군정서 모연대와 협의하도록 하였다. 김인순은 1920년 4월 30일 북간도의 송언동(松堰洞) 김상원(金相元)의 집에 가서 대한군정서 모연대 제4대장 이홍래(李鴻來) 등에게 군자금 모금 계획을 보고하고 찬동을 얻었다. 그해 5월 2일 회령의 국민학회(國民學會)에 이홍래 등 5명과 함께 모여 앞서의 계획을 실행하기로 하였다. 그날 밤 이홍래를 안내하여 회령군 참사 김정균 집으로, 임태순은 나머지 대원 3명을 안내하여 김이래 집으로 갔다. 그러나 김이래는 이미 도망하고 집에 없었다. 반면 이홍래와 함께 김정균을 납치하여 두만강을 건너 간도 증산곡(甑山谷) 초가로 데려가 사촌동생인 김성균(金聖均)에게 1만 원을 가져오라는 편지를 보내게 하였다. 김성균의 편지를 받은 동생 김희균(金熙均)이 같은 달 5, 6일경 김정군 소유의 러시아 지폐 10만 불을 가지고 와서 모연대에 지불하였다. 그해 (음)7월 14일 한윤석(韓允錫)·석기운(石基雲)·김군명(金君明) 등에게 권총을 휴대시켜 회령군 팔을면(八乙面)에 있는 백천사(白泉寺)에 가서 군자금을 모금하게 하였다. (음)8월경 김기수(金璣洙)에게 군자금 500원을 10월 15일 안에 제공한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이러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1920년 12월 13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1921년 2월 4일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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