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金東鎭1891. 11. 29 ~ 1938. 3.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주비단
- · 신민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11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고도면(高道面, 현 갈산면) 행산리(杏山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신 안동新安東이며,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의 친동생이다. 만주 및 국내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9세부터 16세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고, 충남 호명중학교(湖明中學校)에서 2년, 서울 오성학교(五星學校) 및 융희학교(隆熙學校) 내의 정리강습소(精理講習所) 야학에서 각 1년간 수학하였다.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국내에서는 군자금 모집을 위한 주비단(籌備團)이 서울과 황해도 지역에서 결성되었다. 서울에서는 장응규(張應圭)·이민식(李敏軾)·여준현(呂駿鉉, 여운형의 5촌 조카) 등이 1920년 2월 장응규를 상하이 임시정부에 파견하였다. 1920년 5월 장응규가 주비단규칙(籌備團規則)을 가지고 귀국하면서, 동년 6월 서울 경신학교(儆新學校) 교정에서 서울 주비단이 결성되었다. 당시 서울 종로구(鍾路區) 필운동(弼雲洞)에 거주하며 미곡 중개에 종사하던 중 주비단의 활동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1921년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받았으나, 1921년 12월 22일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한편, 1921년 초 작성된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주요 임원 명부에는 ‘김좌진의 친동생’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후 1923년 서울 종로구 권농동(勸農洞)에 거주할 당시, 1920년 가을 경상북도 지역에서 김찬규(金燦奎)·신태식(申泰植) 등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군자금을 대기 위해 조직한 의용대(義勇隊)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 의해 1923년 9월 30일 방면되었다. 이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활동 상황은 밝혀지지 않고, 1920년대 말 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 통합 운동의 일환으로 1928년 9월 지린성(吉林省) 용지현(永吉縣) 신안둔(新安屯)에서 3부통합회의가 개최되었을 때 신민부 대표로 참석하였다. 회의는 결렬되었고, 같은 해 12월 정의부의 지청천(池靑天)·김동삼(金東三), 참의부의 김승학(金承學), 신민부의 김좌진(金佐鎭) 등이 포함된 촉성회 측이 혁신의회軍民革新議會를 조직하였을 때 민사위원(民事委員)으로 참가하였다. 1938년 3월 13일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