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구
金得龜미상 ~ 1922. 9
관련 단체
- · 한교민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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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출생일 및 출생지, 가족관계는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렵다. 도만(渡滿) 시기나 경위도 알기 어려우나 1922년경 서간도(西間島) 콴뎬현(寬甸縣)에 거주하면서 한교민단(韓僑民團)의 경호원으로 활동하였다. 한국의 의주(義州)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접한 국경지방인 콴뎬현은 경술국치를 전후한 시기부터 많은 민족운동가들이 망명한 지역이었다. 또한 일제의 압박을 피해 단지 삶을 위해 이주한 한인들도 상당하였다. 이주 한인들은 민족운동가들이 구축한 독립군기지 주변에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들 한인들은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독립군의 군량미로 지원하고, 2세들은 민족운동가들이 설립한 민족학교에 보내 장차 독립군 자원으로 육성하였다. 이 같은 상황이었기에 한인 사회 또한 민족운동가들이 보호하고 양성시켜야 될 대상이었다. 각 마을에 독립군을 파견해 한인들의 안위를 돌보게 하거나 마을에서 직접 경호원을 선출해 일제나 마적의 기습 공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체재에 따라 마을에서 선출된 민단 경호원이 되었다. 1922년 (음)9월경, 한 무리의 일제 경찰대가 독립군 또는 배일(排日) 한인을 수색하러 마을에 접근하였다. 경호대가 있음을 알고 있는 일제 경찰대는 은밀히 마을 안으로 침투하였다. 이 경찰대에게 민단 총무 이영하(李永夏) 및 서기 이영민(李英敏)과 함께 붙잡혀 콴뎬현 관문립자(關門砬子)로 끌려가 살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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