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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하

金得河

미상 ~ 1922.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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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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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관전현 하루하(下漏河) 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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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출생일 및 출생지, 가족관계 등은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렵다. 만주로 건너간 경위 또한 알기 어렵지만, 1922년경 서간도(西間島) 지역에 근거지를 가진 독립군단(獨立軍團)의 검찰장(檢察長)으로 활동하였다. 검찰장이란 소속 독립군 또는 관할 지역 한인의 비리를 적발해 처벌하는 사법적 업무를 수행하는 직책이었다. 하지만 어느 독립군단이나 마찬가지로 부서 및 직책과는 상관 없이 필요시에는 항일 무장투쟁을 수행하였다. 1922년 2월 14일 독립군단의 분대장인 고승득(高勝得)과 직속 부하인 검찰 정기순(鄭基淳) 등을 비롯해 9명으로 구성된 유격대의 일원이 되어 국내로 진입하였다.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성서면(城西面)으로 진입한 유격대는 옹암동(瓮岩洞)의 구장(區長) 집과 다른 친일 부호의 집 두 곳을 더 습격하고 신속히 압록강을 넘었다. 독립군의 습격전을 빠른 시간에 파악한 일본 경찰대는 곧 추격조를 구성해 뒤쫒았다. 2월 16일 독립군이 압록강을 넘어 막 콴뎬현(寬甸縣) 하루하(下漏河)에 도착했을 때 일본 경찰대도 그곳에 당도하였다. 하루하는 환런(桓仁) 및 지안현(輯安縣) 등과 붙어 있는 접경으로 도로가 발달된 지역 이었다. 그리고 초산을 마주보고 있는 압록강변 지역으로 강폭이 좁아 많은 독립군이 국내로 진입할 때 이곳을 이용하였다. 일제 경찰대가 추격하자 독립군은 더 진군하지 않고 그들을 맞아 교전을 펼쳤다. 17일까지 이틀간 독립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분대장 고승득, 부하 정기순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나머지 6명의 대원은 사선을 빠져 본부로 귀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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