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률
金相律미상 ~ 1923. 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 · 대한의군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경상북도 영주(榮州) 출신이며, 이명으로 김승렬(金承烈)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출신에 대해서는 『영남출신독립운동략전』에는 영주로 되어 있고, 『공훈록』에는 영천(永川)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과거 영주를 영천(榮川)이라 하였는데, 이를 영천(永川)으로 오인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1운동 이후 남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입단,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한말 의병장 출신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대한독립단에서 동지 5명과 함께 일제의 친일기관인 보민회(保民會)를 습격하는 등 친일파 제거 및 군자금 모집에 주력하였다. 1920년 9월 24일 동지 4명과 함께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사산동(社山洞) 소나무 숲에서 일제 경찰과 충돌하여 순사 사토(佐藤)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이어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이동순(李東順)의 밀고로 일본 군경과 교전하기도 하였다. 1921년 3월 홍주(洪疇)·김형모(金亨模)·한봉조(韓鳳朝)·김은순(金恩淳) 등과 함께 압록강 유초도(柳草島)에 주둔하면서 교통국장 백승서(白承瑞)와 안둥현(安東縣) 일본영사관과 은행 습격을 협의하였다. 그러던 중 일본 군경 42명의 공격을 받게 되자, 반격하면서 백승서가 준비한 밀항선을 타고 단원들과 함께 탈출하였으나 백승서는 체포되고 말았다. 같은 해 9월에는 대한독립단 암살대 대장 박창열(朴昌烈)의 휘하에서 김인수(金仁洙)·이경원(李敬遠)·김천봉(金天奉) 등 7명과 함께 환런현(桓仁縣)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2년 2월에는 콴뎬현(寬甸縣) 일대에서 대한독립단 이웅해(李雄海) 휘하의 암살대 서기(書記)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독립단이 1923년 2월 대한통의부와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로 분열되자 대한의군부의 대한충용군(大韓忠勇軍) 부교(副校)의 직책을 맡았다. 1923년 8월경 대한의군부 군무총감(軍務總監) 전덕원(全德元)의 지시로 제1중대 제1소대장 이경일(李京日), 제3소대장 김일록(金日錄) 등 80여 명과 함께 국내로 진공하였다. 그때 이경일의 지휘 아래 동지 80명과 함께 평북 의주군(義州郡) 청성진(淸城鎭)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8월 8일 새벽 3시 청성진의 하류 법전동(法田洞)에서 2대로 나누어 1대는 청성진우편소를 습격하여 전선을 절단하고 방화하였고, 다른 1대는 청성진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 후쿠다福田能孝를 총살하고 마츠오(松尾謙)의 다리를 관통시키는 중상을 입혔다. 그러나 뒤늦게 출동한 다이사쿠(大作) 경부보 등 의주(義州)·신의주(新義州)의 경찰과 전투를 벌이다 단원 6명이 전사하였고, 붙잡히자 단식·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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