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완
金商完1903. 7. 15 ~ 1942. 5.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정의부
- · 국민부
- · 조선혁명군
포상 정보
- · 애족장(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3) 1903년 7월 15일 경기도 진위군(振威郡) 포외면(浦外面) 도곡리(道谷里)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중국 푸순현(撫順縣) 장당(章黨)에서 정의부(正義府)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정의부는 통의부가 분열된 뒤 만주의 독립운동계 수습책의 일환으로 성립되었다. 1924년 11월 8개 단체 대표 25명이 지린(吉林)에 모여 김동삼을 의장으로 한 통합회의 끝에 성립된 정의부는 1929년 3월까지 남만주 독립운동의 중심 단체로서 활동하였다. 1929년 4월 1일, 정의부·신민부(新民府)·참의부(參議府) 등 3부 대표가 통합회의를 열어 국민부(國民府)를 발족하자 여기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국민부는 산하에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을 두었는데, 조선혁명군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의 창당과 동시에 형성된 원래의 국민부 산하 혁명군이었다. 조선혁명군의 지휘관과 사병들은 거의 20~30대의 청장년이었고, 기관총과 소총 등으로 무장하였다. 조선혁명군 계두찬(桂斗贊)·한창국(韓昌國) 등과 함께 군자금 모금 활동하다가 1932년경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2년 7월 27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옥고를 겪다 징역 1년 9개월로 감형되어 1934년 5월 출옥하였다. 출옥 후 조선혁명군정부(朝鮮革命軍政府) 대원으로 편입되었다. 조선혁명군정부는 1934년 11월 11일 항일투쟁의 효율을 높이고자 조선혁명당의 행정조직인 국민부와 군사조직인 조선혁명군을 통합하여 조직되었다. 이후 조선혁명군정부 대원으로 일본군과의 교전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1936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일제 관동군이 독립운동 세력들을 제압하려고 이른바 ‘동변도(東邊道) 치본공작(治本工作)’을 추진하면서 조선혁명군정부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38년 9월 총사령 김호석이 안둥공서(安東公署)에 붙잡히면서 조선혁명군은 해체되었다. 그 후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중국 관내나 소련 등으로 도피하여 항일 투쟁을 지속하였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펑톈(奉天) 등지에서 항일 활동하였다. 1941년 가을 귀국하였으나 병환으로 인해 1942년 5월 1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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