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출
金卜出1873 ~ 190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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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경상북도 개령군(開寧郡) 동면(東面) 오감리(五甘里, 현 김천시(金泉市) 개령면) 출신이다. 출생 연도를 전하는 기록은 없으나 판결문에 1907년 당시 35세였으므로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이에 항거하는 국권회복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이 무렵 경북 김산군(金山郡) 김천(金泉) 시장에서 박일대(朴一大)·임천쇠(林千釗)·윤말용(尹末用)·이흑보(李黑甫) 등과 함께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다. 1906년 (음)5월 21일 밤 박일대 등과 같이 총칼을 휴대하고 경북 개령군 한곡(漢谷)에 사는 서병원(徐丙元)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 200냥을 징수하였다. 이튿날 22일 밤 같은 한곡 마을의 한 부유한 집에 들어가 군자금 300냥을 요구하였으나, 150냥을 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뒷날 김천 장터에서 이를 거두어들였다. 1906년 (음)6월경 개령군 용전(龍田)에 사는 박윤경(朴允京)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 150냥을 요구하였으나 현금이 없자 뒷날 김천 시장에서 받기로 하고 집을 나왔다. 또 같은 달 26일 개령군 신평동(新平洞)에 사는 김참봉 집에 가서 군자금 130냥을 징수하였고, 29일 김산군 진목곡(眞木谷)에서 살고 있는 편군선(片君善)의 집에 들어가서 군자금 70냥을 징수하였다. 또 같은 날 충청도 활빈당 출신 마중군(馬中軍)이 거느린 의병 80명이 와서 모인다 하여 개령군 모강수리(暮江藪里)에서 이들을 만나 함께 양총과 환도를 휴대하고 김산군 낙곡동(洛谷洞)으로 가서 군자금 500냥을 징수하였다. 또 같은 해 7월 10일 개령군에 사는 허성주(許星州)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 100원을 징수하였고, 배응도(裵應桃) 집에 가서는 군자금 1,000냥을, 정(鄭)참봉 집에서는 군자금 500냥을, 홍주사 집에 들어가서는 군자금 200냥을, 그리고 읍내 서부동(西部洞) 홍가 집에 들어가서는 군자금 100냥을 각각 징수하였다. 이어서 김산군 북면 남곡동(南谷洞)에서는 주민의 밀고로 의병 3명이 희생당했던 사실에 대한 복수로 민가를 불태우고 관련자 4명을 처단했다. 1907년 (음)2월 16일 개령군 구리령(鉤里嶺) 밑에 사는 이모(李某) 집에 들어가서 군자금 107냥을 징수하였다. 같은 달 21일 밤 선산군 연흥동(連興洞)의 임모(林某)의 집에 가서 300냥과 그 일가 사촌들로부터 군자금 180냥을 거두었다. 또 개령군 마곡령(馬谷嶺) 뒷마을 박존위(朴尊位)의 집에 들어가서 군자금 200냥을 거두었다. 1907년 (음)3월 6일 의병장 박일천(朴一天)의 총기 탄환을 사려고 선산군(善山郡) 구미(龜尾) 장터에 몰래 들어갔다가 잡혔다. 같은 해 5월 4일 평리원(平理院)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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