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흥
金基興188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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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80년경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경포면(景浦面) 좌상리(左上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6일 홍원군 주익면(州翼面)의 장터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의 거주지는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하차서면(下車書面) 신태리(新泰里)였다. 홍원 3·1운동은 민족대표였던 보성사 사장 이종일(李鍾一)에 의해 홍원 천도교구 소속의 강인택(姜仁澤)에게 독립선언서가 전해지며 계획되었다. 강인택은 박조섭(朴琱燮)과 협의하여 독립선언서 배부와 만세 시위를 모색하였다. 이어 3월 초순, 홍원군 천도교 교구장 강남섭(姜南燮)은 전국적인 만세 운동에 호응하여 천도교도를 필두로 한 시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였다. 강남섭은 3월 3일 강인택 등 3명에게 만세 운동에 대한 동의를 얻었으며, 7일에는 김세경(金世暻)과 김한욱(金漢郁) 등 5~6명과 시위의 방법을 논의하였다. 아울러 교구의 조직을 이용하여 홍원읍 일대의 주민들에게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들은 3월 16일부터 3일 동안 읍내 장터에 다수의 군중이 모이는 상황을 이용하여 시위를 진행하기로 계획하였다. 3월 12일, 흥원군 학천면 풍산리 연상姜鍊翔의 자택에서 독립선언서 약 1,000매를 등사하던 자리에서 16일 홍원 장날에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한 계획을 듣고 즉각적으로 찬동하였다. 강인택과 더불어 시위를 확대하기 위하여 군중을 지휘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3월 16일 만세 시위의 선두에 서기로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강연조(姜鍊朝)·박조섭 등과 함께 시위 준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3월 16일 오전 11시, 홍원 읍내의 공성상회 앞에 모인 천도교도 등 700여 명의 군중은 독립 만세를 외치는 가운데 시위를 벌였다. 이때 솔선하여 구(舊)한국 국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을 외치며 시위대를 이끌었고, 참여자들은 이를 따라 부르며 홍원 읍내를 행진하였다. 홍원경찰서 소속 경찰들은 사전에 준비를 해두었던 붉은색 잉크를 뿌리며 시위 행렬을 제지하다가 군중에게 발포하여 3명이 사망하는 등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10여 명의 천도교인이 붙잡혔다. 1919년 4월 26일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6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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