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동
金吉東1878. 6. 25 ~ 1954. 7.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3
- · 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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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78년 6월 25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桃李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길동(金吉同)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4일 천의(天宜)장터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전개되자 3월 26일 대호지면사무소 직원인 송재만(宋在萬)·김동운(金東雲)·강태완(姜泰玩)·민재봉(閔載鳳)은 회합하여 다른 지역에 부끄럽지 않도록 만세 운동을 벌이자고 결의하였다. 이튿날 회의에서 김동운은 4월 4일 천의 장날에 많은 사람이 모일 테니 각 구장에게 공문을 보내어 면사무소에서 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전개하자고 제안하였다. 4월 2일 저녁에 「도로 보수 가로수 정리의 건」이라는 위장 공문을 만들었고 4월 3일 각 마을 이장들에게 교부하였다. 4월 3일 저녁 송재만 등은 도호의숙 훈장인 한운석(韓雲錫)에게 시위 계획을 알리고 시위 군중에게 배포할 애국가를 짓고 인쇄하였다. 4월 4일 거사일이 되자 오전 8시경 대호지면사무소에는 각 동리에서 400~500여 명의 군중이 집결하였다. 면장 이인정(李寅正)이 독립운동을 고취하는 연설을 하자 군중은 만세를 외치며 천의장터까지 7킬로미터에 달하는 행진을 시작하였다. 오전 11시 천의장터에 도착하자 시위대는 1,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만세 시위가 오후 4시 이후에도 이어지자 일본 경찰은 권총을 발사하여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과 일본인 및 시위대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이어지자 일본 경찰은 천의에 머물던 일본인을 서산으로 옮기고 시위대 탄압에 들어섰다. 4월 5일 새벽 홍성(洪城)에서 병력이 급파되었고 시위대를 연행하며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2명이 사망했고 198명이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혔다. 1919년 4월 24일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笞刑) 90도(度) 처분을 받았다. 이후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으며 1954년 7월 1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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