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성
金吉成1900. 3. 3 ~ 1943. 1.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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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0년 3월 3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赤鼠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사무소와 정미면(貞美面) 천의리(天宜里) 천의 장터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 충남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도 독립 만세 운동이 준비되고 있었다. 이때 대호지면 북부 지역인 사성리(沙城里)와 적서리 2개 마을의 연락책으로 활동하며 시위를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1919년 4월 4일 아침 마을 주민들과 함께 대호지면사무소에 집결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고 7킬로미터 떨어진 정미면 천의장터를 향해 행진하였다. 장터로 가는 도중 여러 마을 주민들이 합류하여 천의 장터에 도착하였을 때 군중은 약 1,000명에 이르렀다. 이때 시위 군중들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천의 장터를 행진하였다. 오후 4시경 염건피장(鹽乾皮場) 부근에서 태극기를 압수하려는 순사와 이에 저항하는 군중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순사들은 군중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고 경찰관주재소로 도주하였다. 이에 김금옥(金今玉)·김부복(金夫卜)·원순봉(元順奉) 등과 함께 경찰관주재소에 돌을 던져 주재소 문과 게시판 등을 파괴하였다. 권총을 발포한 상원상정(上原尙定) 순사와 이재영(李在英) 순사보 등을 구타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5월 3일경 일제 경찰에 붙잡혀 이해 11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위반, 소요, 출판법 위반, 공문서위조행사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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