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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수

金洛綬

1880. 1. 19 ~ 1919.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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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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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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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3
  • · 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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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80년 1월 19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상남면(上南面) 등억리(登億里,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낙수(金洛洙)를 쓰기도 했다. 3·1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4월 2일 언양면(彦陽面) 남부리(南部里) 언양시장 장날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언양의 만세 운동은 천도교 계통의 지역 유지인 이무종(李武鍾)·이규인(李圭寅)·이성영(李成榮)·강경찬(姜庚贊)·최해선(崔海璇)·이규경(李圭庚) 등이 준비하였다. 길천리(吉川里) 이무종의 집을 본부로 삼은 이들은 남부리 언양 장날인 4월 2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비밀리에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3월 31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일제 경찰은 천도교인 최해규(崔海圭) 형제와 곽해진(郭海鎭)·유철순(兪哲淳) 등을 언양경찰관주재소로 연행해갔다. 나머지 주도자들은 4월 1일 이규인의 집에서 밤새 태극기 42매를 제작하고 시위의 구체적인 행동을 논의하는 등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특히 4월 1일은 인근 양산 통도사 스님들이 군중과 함께 만세 운동을 전개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4월 2일 언양 장날에 만세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시장으로 나갔다. 주동자들이 나눠주는 태극기를 받아 들고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긴급 출동한 경찰이 주도자 몇 명을 언양주재소로 강제 연행해 가는 것을 보고 주재소로 달려가 격노한 군중과 함께 주재소에 돌을 던지거나 경찰과 육박전을 벌이면서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때 일본군 수비병이 시위 군중에게 총격을 가하여 1명이 즉사하였고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군중과 함께 해산한 후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으로 붙잡혔다. 1919년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5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던 중 6월 2일 옥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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