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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청송

權靑松

1868. 3. 29 ~ 193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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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권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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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일(迎日)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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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산남의진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입암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68년 3월 29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죽남면(竹南面) 광천동(廣川洞, 현재 포항시 북구 송라면(松羅面) 광천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는 국권 상실의 위기 속에서 고종의 밀조(密詔)를 받은 정환직(鄭煥直)은 아들 정용기(鄭鏞基)에게 의병을 일으키도록 명하였다. 정용기는 고향 경북 영천(永川)으로 내려와 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 등과 더불어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일으켰다. 산남의진은 1906년 (음)4월 28일 일본군에 패한 신돌석 의병부대를 돕고자 영해(寧海)로 진군하였다. 그러나 진군 중에 정용기는 경주진위대(慶州鎭衛隊)의 간계에 속아 경상감영에 구속되었다. 그 뒤 아버지 정환직의 주선으로 풀려나자 1907년 4월 북동대산(北東大山)에서 재기하였다. 1907년 7월부터 강릉(江陵)을 향한 북상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영해·청하·청송·포항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7년 (음)8월 28일 산남의진 본진에 들어가 북상 계획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길목마다 일본군이 가로막고 있어 의병부대는 여러 지대(支隊)로 나뉘어 활동을 폈다. 이때 속해 있던 본진은 (음)8월 29일 영일군 죽장면 매현(梅峴)으로 들어가 진을 쳤다. 본진은 (음)9월 1일 저녁 일본군이 죽장면 입암(立巖)으로 들어온다는 정보를 알고, 연습장 우재룡(禹在龍), 우포장 김일언(金一彦), 후봉장 이세기(李世紀) 세 부대를 세 방향으로 내보내, 일본군의 퇴로를 막도록 하고, 본영은 (음)9월 2일 새벽에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계획하였다. (음)9월 1일 오후 9시 30분경 이세기 부대가 목적지 광천(廣川)을 향해 가던 중 입암리 원촌(院村) 마을을 지나다가 일본군 몇 명을 보고 성급히 공격하였다가 매복해 있던 일본군의 집중 공격을 받아 패하고 말았다. 이 소식에 놀란 본영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음)9월 2일 새벽 원촌마을에 도착하였으나 오히려 일본군 수비대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약 2시간 동안 격전을 치렀지만, 대장 정용기와 중군장 이한구 등 여러 장령과 병사들이 죽거나 다쳐 참패하고 말았다. 이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정용기 대장의 지휘를 받아 본영에서 담군(擔軍)으로서 군기와 군량을 운반하던 중 체포되었다. 1909년 2월 1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감옥에 갇혀 노역(勞役)을 하는 이른바 역형(役刑) 2년 형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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