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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金明鎭

188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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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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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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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2) 1887년경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청안면(淸安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판결문 기록으로 보아 3·1운동 당시 33세로, 청안면에서 줄곧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30일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에 위치한 청안시장(淸安市場)의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던 1919년 3월, 괴산군 청안면에서도 대대적인 만세 운동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청안공립보통학교(淸安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은 청안면 장날인 3월 20일 장터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계획하였다. 하지만 전날인 3월 19일 청안경찰관주재소에 이 계획이 발각되었다. 경찰의 수색으로 준비된 구(舊) 한국기 7개 등이 압수되고, 주도 학생들이 소환·취조당하면서 만세 운동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사전 탄압도 청안면 사람들의 만세 운동 의지를 막을 수 없었고, 열흘 뒤인 3월 30일 3,000여 명이 참가한 대대적인 만세 운동이 청안면 장터에서 벌어졌다. 1919년 3월 30일 오후 3시 반 무렵 청안면 읍내리 청안시장에서 김수백(金壽伯)·이태갑(李泰甲)·신강면(辛康勉)·장성원(張聖源) 등의 주도로 3,000명의 군중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주도 인사 7명이 청안경찰관주재소로 연행되자 시위군중은 주재소로 가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돌을 던졌다. 일부 군중은 주재소에 쳐들어 갈 것을 주장하였다. 이때 젊은 청년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붙잡힌 주도자들의 석방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함께 시위 운동에 참여했던 박홍균(朴弘均)·김종규(金鍾奎) 등이 체포되자 안낙여(安落汝)·임수근(林水根) 등과 함께 주재소로 가 ‘무슨 이유로 이들을 체포하느냐? 바로 석방함이 마땅하다!’라고 외치며 체포된 마을 주민의 석방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거부하며 체포자들을 석방하지 않았다. 그러자 군중을 지휘해 안낙여 등과 함께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져 주재소의 유리 창문·칸막이 문 등을 파손하였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일본 경찰은 괴산에서 파견된 충주 수비대원과 함께 군중에게 발포를 감행하여 청안면 4명, 괴산면 1명, 청주군 북이면 주민 2명 등 7명이 사망하였다. 시위 군중은 주재소에서 물러난 후 해산하였다. 이날의 만세 시위 운동 과정에서 주동자로 파악된 13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7월 1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8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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