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명하

金明河

1900. 8. 30 ~ 1919. 5. 2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명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강계(江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강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900년 8월 30일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강계면(江界面) 서부동(西部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8일 강계 지역의 만세 시위를 이끌었던 김경하(金京河)의 동생이다. 만세 운동 당시 영실중학교(英實中學校)에 재학하고 있었다. 강계는 평북 동북지방의 중심지였지만 교통이 다소 불편하여 3·1운동 소식이 늦게 전해졌다. 이 때문에 강계면에서는 4월 8일에서야 시위가 일어났다. 강계의 만세 시위는 영실중학교·명신학교(明新學校) 인사들과 천도교·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영실중학교 교사 김경하와 정준(鄭儁), 명신학교의 한봉민(韓奉珉) 등은 3월 20일경에 거사를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뒤이어 기독교·천도교 측과 협의하고 지역 유지를 망라한 21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본격적인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3월 25일 회의를 열고 거사 일을 4월 8일 오전 11시로 정하고, 남장대(南將臺) 예배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기로 하였다. 이 계획에 참여하여 만세 시위 준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둘째 형인 김성하(金成河)의 자택 안방을 비밀장소로 삼고, 동료 학생 김성길(金成吉)·문태선(文泰善)·강석문(姜錫汶) 등과 함께 만세 시위에서 배포할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들은 하룻밤 사이에 태극기 2,000매를 제작하였고, 싸리나무를 확보하여 깃대를 마련하였다. 4월 8일 11시, 남장대 예배당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짐에 따라 강계의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사전에 약속된 바와 같이 영실중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군중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장날이었기 때문에 모인 장꾼들이 시위대에 합류하여 만세 운동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며 읍내의 북문을 향해 행진하였다. 그러나 출동한 일본 헌병과 보병들은 사전에 어떠한 경고도 없이 실탄 사격을 하며 무력 진압을 강행하였다. 이로 인해 시위를 주도하던 정준 등 4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으며, 1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만세 시위 현장에서 붙잡혀 2주간 조사를 마친 후 신의주 검찰국에 송치되었고, 이어 신의주감옥으로 압송되었다. 약 3개월 후에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20세 이하라는 명목으로 태(笞) 90도(度)를 선고받고 5월 16일부터 3일간 하루에 태 30대씩을 맞았다. 5월 18일 석방되었으나, 태독(笞毒)의 여파로 인해 불과 7일만인 5월 2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