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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金明鎬

1887. 6. 17 ~ 1951.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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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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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水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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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7년 6월 17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장안면(長安面, 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水村里)에서 출생하였다. 김여근(金汝根)으로도 불렸다.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였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3일 마을의 소사 이원준(李元俊)에게 만세 시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점심을 먹은 후 몽둥이를 들고 김성익(金成益)·김황운(金黃雲)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2,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장안면 사무소 앞에서 석포리에서 온 군중과 합류해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인근 쌍봉산(雙峯山)에 올라가 독립 만세를 외쳤다. 다시 우정면사무소로 가 서류를 불태우고 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하였다. 오후 5시경 시위 군중과 함께 몽둥이를 들고 화수리(花樹里)에 위치한 화수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일본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으며, 권총을 발사한 일본인 순사 가와바타川端豊太郞를 처단하였다. 주재소를 파괴·방화한 이후 주민들은 해산하였고, 저녁을 먹고 다시 장안면 사랑리 남산에 모여 일본 군경과 싸우기로 하였다. 4월 4일 일본군 제20사단 39여단 78연대 소속 아리타有田俊夫 중위가 1개 소대 병력을 이끌고 와 화수리를 포위하고 총을 쏘며 주민을 탄압하였다. 4월 9일 츠무라津村憲美 특무조장, 후루야(古屋) 수원경찰서장 등으로 구성된 검거반이 장안면·우정면 화수리 일대를 수색할 때 붙잡혔다. 이 일로 붙잡혀 오랫동안 고초를 겪다가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 특별형사부에서 경성지방법원을 관할재판소로 지정하여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8월 9일 경성지방법원 제1형사부에서 항소를 수리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후 검사의 항소로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 살인, 방화 등의 혐의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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