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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옥

金文玉

1898. 2. 10 ~ 1955.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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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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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大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대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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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2월 10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칠성동(七星洞, 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당시 경북 달성군(達城君) 공산면(公山面) 도학동(道鶴洞, 현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동화사(桐華寺) 부속 지방학림(地方學林)의 학생이었다. 1919년 3월 30일 대구부 덕산정(德山町) 남문 밖 시장(현 염매시장)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서울의 3·1운동에 참가한 불교중앙학교 학생 윤학조(尹學祚)가 고향인 달성군 공산면으로 내려와 고향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려고 계획하였다. 동화사 아미산 포교당에서 권청학(權淸學)과 함께 윤학조를 만났을 때 동화사 지방학림이 중심이 되어 만세 운동을 일으킬 것을 권유받았다. 이후 동화사 지방학림 학생들을 대웅전 옆 심검당(尋劍堂)에 불러 모아 ‘신문 기사를 보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한국 내 각지에서는 벌써 독립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도 한국민족의 일원으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역설하며 학생들의 찬동을 얻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시위 준비에 들어갔다. 처음 시위 장소는 공산면에 있는 백안시장이 거론되었으나 규모를 고려하면 시위의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여 시위 장소를 변경하기로 하였다. 논의 끝에 동화사 대구 포교당에서 가까운 덕산정 시장(남문 밖 시장)을 시위 장소로 하고, 거사 일은 3월 30일 장날로 정하였다. 3월 29일 동화사 지방학림 학생 이성근(李成根)·이보식(李普湜)·김종만(金鍾萬)·박창호(朴昌鎬)·김윤섭(金潤燮)·허선일(許善一)·이기윤(李起胤)·권청학 등 8명과 함께 미리 준비한 태극기 등 시위 물품과 깃대를 휴대하고 대구의 동화사 포교당으로 갔다. 동화사 포교당에 도착한 후 가지고 온 흰 천을 이용하여 대형 태극기 1개를 만들었다. 그날 밤은 포교당 김상의(金尙儀)의 방에서 숙박하였다. 3월 30일 거사 당일,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 등을 감추어 덕산정 시장으로 잠입하였다. 오후 2시경 2,000~3,000명 모인 시장 중앙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자 그 자리에 있던 군중이 적극 호응하였다.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시장을 누비면서 만세를 외쳤다. 급보를 받은 일본 경찰이 달려와 군중을 총검으로 위협하여 해산하였다. 이때 지방학림 학생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동화사 지방학림은 1개월간 강제 휴교 조치를 당하였다. 1919년 4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7월 3일 고등법원형사부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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