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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배관

金培寬

1885. 1. 10 ~ 1977.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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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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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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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5년 1월 10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외가천리(外加川里)에서 태어났다. 김관백(金寬伯)·김대관(金大寬)으로도 불렸다. 1919년 당시 원곡면 칠곡리(七谷里)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원곡면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주재소 및 우편소를 파괴하는 데 앞장섰다. 안성 지역의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1일 양성공립보통학교에서 시작하였다. 이후 1919년 3월 28일 원곡면에서 고종의 국장을 참관한 이들이 소식을 알리며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원곡면 일대 마을 주민들이 만세 운동을 하는 등 분위기가 확산하자 대다수의 원곡면 주민이 동참하였다. 3월 31일 면민들이 원곡면사무소에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원곡면사무소로 가서 만세 시위에 동참하였다. 4월 1일 최은식(崔殷植)·홍창섭(洪昌燮)·이유석(李裕奭) 등이 주동이 되어 전개한 양성면(陽城面)·원곡면 일대의 독립 만세 시위에도 참여하였다. 4월 1일 저녁에 동리에서 독립 만세를 외친 뒤 이희봉(李熙鳳)·손정봉(孫正奉) 등과 양성면으로 행진하여, 오후 9시경 동항리(東恒里)에 있는 양성경찰관주재소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길에, 원곡면장을 선두에 세우고 횃불을 들고 행진해 오던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합세하여 다시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오후 10시경 주재소에 도착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치고, 주재소 건물과 숙직실을 파괴·방화하였다. 이어 양성우편소를 파괴하였으며, 일본 상인의 집과 상점도 파괴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오랫동안 고초를 겪다가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 특별형사부에서 경성지방법원을 관할재판소로 지정하여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 제1형사부에서 항소를 수리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후 검사의 항소로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 살인, 방화 등의 혐의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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