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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춘

金伯春

1880. 3. 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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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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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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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80년 3월 3일 서울 사동(寺洞, 현 인사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양성면(陽城面) 덕봉리(德峰里)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한자가 다른 김백춘(金白春)이란 이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원곡면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안성 지역의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1일 양성공립보통학교(陽城公立普通學校)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919년 3월 28일 원곡면에서 고종의 국장을 참관한 이들이 소식을 알리며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원곡면 일대 마을 주민들이 만세 운동을 하는 등 분위기가 확산되자 대다수의 원곡면 주민이 동참하였다. 1919년 4월 1일 최은식(崔殷植)·홍창섭(洪昌燮)·이유석(李裕奭) 등이 주동이 되어 전개한 양성면·원곡면(元谷面) 일대의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저녁 동리에서 독립 만세를 외친 뒤, 이희봉(李熙鳳)·손정봉(孫正奉) 등과 양성면으로 행진하여 오후 9시경 동항리(東恒里)에 있는 양성경찰관주재소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길에, 원곡면장을 선두에 세우고 횃불을 들고 행진해 오던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합세하여 다시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오후 10시경 주재소에 도착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치고, 주재소 건물과 숙직실을 파괴·방화하고, 양성우편소를 파괴하였다. 이후 양성면사무소로 가 오주일(吳周逸)·오천근(吳千根)·이학봉(李學峰) 등과 함께 서류와 기물을 끄집어내고 방화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오랫동안 고초를 겪다가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 특별형사부에서 경성지방법원을 관할 재판소로 지정하여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 제1형사부에서 항소를 수리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후 검사의 항소로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건조물 소훼, 소요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구류일수 중 500일을 본형에 산입)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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