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병도

金炳道

1886. 4. 17 ~ 1965. 2. 1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교남교육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6년 4월 17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현하동(顯下洞, 현 안동시 길안면 현하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字)는 의사(義士), 호(號)는 박련(薄蓮), 이명은 김병도(金炳途)이다. 아버지는 김준근(金準根)이다. 1908년 3월 영남 지역 인사들이 창립한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에서 활동하였고,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길안면(吉安面)에 위치한 천지시장(泉旨市場)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천지시장의 만세 시위는 임하면 오대동(梧垈洞)의 손영학(孫永學)과 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장두희(張斗熙) 등이 주동하였다. 이들은 3월 21일 길안면 천지시장 장날을 거사 일로 정한 후 태극기를 제작하고, 비밀리에 동지를 규합하는 등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21일 거사 당일,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천지시장으로 가니 군중 400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오후 3시경 주동자들이 시장 중앙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이를 신호로 함께 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출동한 일본 경찰이 제지하자 오후 6시경 길안면사무소로 가서 앞뜰에서 만세를 부르며 돌을 던져 유리창과 문을 부수었다. 시장으로 돌아와 밤 9시경 다시 만세를 부르며 천지경찰관주재소 몰려가 유리창과 가스등을 파괴하였다. 만세 시위는 자정까지 계속되었으나 일본 경찰과 보병 제80연대 소속 군인이 협력해 발포를 하며 위협을 가하여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벌금 50원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지만, 5월 23일 대구복심법원 형사제2부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한국 민족으로서 한국 독립에 대해 기뻐서 만세를 부른 것뿐이고 죄에 저촉될 일은 하지 않았다’라며 상고하였지만, 7월 5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기각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