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규
金炳圭1867. 1. 1 ~ 1954. 10.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화순쌍산의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867년 1월 1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청풍면(淸風面) 증리(甑里)에서 태어나 구례(求禮)에 거주하였다. 본관(本貫)은 김해(金海)이고, 자(字)는 행지(幸芝)이다. 임진왜란 당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인 철산부사(鐵山府使) 김인갑(金仁甲)의 후손이며, 동지부사(同知府事) 김순배(金順培)의 아들이다. 1907년 4월 21일 의병장 양회일(梁會一)이 화순의 계당산(桂棠山)을 근거지로 임창모(林昌模)·안찬재(安贊在)·이백래(李白來)·임노복(林魯福)·임상영(林相永) 등과 거병하여 화순쌍산의소(和順雙山義所)를 조직하였다. 이때 양회일을 찾아가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양회일의 동생 양회룡(梁會龍)이 기록한 『행사실기(杏史實記)』에 따르면 양회일에게 “우리 선조 부사공(府使公, 철산부사 김인갑)은 용사지변(龍蛇之變)에 아우인 의갑(義甲)과 함께 순절하였습니다. 내가 그 남기신 뜻을 보니 털끝이 서고 간담이 떨립니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즉, 선조인 김인갑이 임진년과 계사년에 적과 싸우다 순절하였으나 자신은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가 맺어진 갑진년과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을사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을 한탄한 것이다. 화순쌍산의소에서 조포장(操砲將)으로 활동하며 능주(綾州)와 화순의 관아 및 순사주재소, 헌병분파소 등을 공격하여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화순군 복천(福川) 도마치(刀摩峙)에서 패전하였고, 의병부대 해산 이후의 행적은 명확하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