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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이

金尙伊

1898. 1. 2 ~ 1947.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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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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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密陽)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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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3) 1898년 1월 2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밀양면(密陽面) 내일동(內一洞, 현 밀양시 내일동)에서 태어났다. 밀양의 3·1독립 만세 운동은 고종의 인산에 참여하려고 상경하여, 1919년 3월 1일 만세 의거에 참여한 다음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온 윤세주(尹世冑)·윤치형(尹致衡)이 동화학교 교장을 지낸 전홍표(全鴻杓)를 찾아가 서울의 만세 시위 상황을 전하면서 비롯되었다. 독립을 열망하던 중 만세 의거에 참여하라는 윤소룡(尹小龍)의 제안을 받고 김병환(金餠煥)·이장수(李章守)·윤보은(尹輔殷)·김소지(金小池) 등 동화학교와 밀양공립보통학교 졸업생, 기독교인 등과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13일 밀양 읍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위북산에서 밤새워 독립선언서 수천 매를 등사하였고, 여성 기독교인들은 태극기를 수백 매 만들어 숨겨두고, 인근 마을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 거사 계획을 알렸다. 3월 13일 준비한 물품을 품속에 숨기고 밀양공립보통학교 앞 밀양장터에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집결하였다. 오후 1시 30분경 ‘조선 독립 만세’라고 크게 쓴 기를 펼쳐 세우고, 윤세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에게 배포하면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장터에 운집한 군중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 만세’를 불렀으며, 윤방우(尹芳友)·박작지(朴作之) 등과 앞장서서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독립 만세’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시위 군중이 거리를 누비며 행진을 시작하자 밀양 거리는 시위 인파로 뒤덮였고, 시위대 중 일부는 밀양공립보통학교로 들어가 운동장을 내달으며 만세 함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밀양 주재 일본 헌병과 경찰 병력이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지 못하자, 부산 일본헌병수비대 병력의 지원을 받아 폭력적으로 진압하였다. 일본 군경이 주동 인물 색출 작업에 나섰지만, 다음 날인 3월 14일에도 밀양공립보통학교 학생 200여 명이 교사들의 제지를 물리치고 태극기를 들고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일제에 붙잡혀 이 해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 처분을 받았다. 이후 고향 사람 김원봉이 결성한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민족혁명당 당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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