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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환

金鳳煥

1873. 5. 10 ~ 191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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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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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長城)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장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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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3년 5월 10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서삼면(西三面) 금계리(金溪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회봉(晦峰)이다.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제자로 어릴 때부터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공부에 집중하였다. 1901년 지방관의 추천으로 중추원(中樞院) 참의(參議)가 되었는데, 세제(稅制) 개혁안을 제출하였다. 1903년에는 또 인재 택용과 군비 확충 등의 헌의(獻議)를 하였으나 채용되지 않으므로 사임하고 귀향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1908년 8월에는 『황성신문』의 신진부(新進部)로 이름이 올랐는데 신진부는 청년부와 비슷하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가 망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여 북쪽을 바라보고 통곡하였다. 제자들을 모아 놓고 일제의 야만성을 성토한 뒤, 국권을 회복할 방법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 곧바로 일제의 헌병대에 발각되어 투옥되었다. 옥중에서도 일제 침략자들을 신랄히 규탄하였다. 결국 옥중에서 중병이 들자 석방되어 집에 돌아왔으나 계속 피를 토하다가 며칠 후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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