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한
金商翰1842. 5. 17 ~ 1917. 10.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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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42년 5월 17일 충청북도 제천(堤川)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司諫院) 정6품 벼슬인 정언(正言)을 지냈다.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주서(周瑞), 호는 청은(淸隱)이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김상한(金尙翰)이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된 후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였다. 당시 문경에서 활동하던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의 소식을 듣고, 1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이강년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그 휘하에서 별진장(別陣將)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이강년이 문경을 떠나 경기 지역으로 이동한 후에는 따로 독립하였으며, 경북 지역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그 이후에도 때에 따라 이강년 부대와 연합하여 전투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1907년 4월 경북 조령(鳥嶺)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수 명의 적군을 사살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문경에서 일본군 800여 명과 교전 끝에 53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올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패하여 많은 부하를 잃고 말았다. 이에 남은 병력 100여 명과 함께 충청북도 단양으로 퇴각하여 재기를 도모하였다. 1908년 9월에는 이강년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경상·충청 지역을 회복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09년 초에는 경북 순흥(順興, 현 영주)에 본진을 두고 항쟁을 지속하였다. 부하 600~700명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소모장(召募將)으로 김상태(金相台)·이명상(李明相), 좌익대장으로 이춘삼(李春三), 우익장(右翼將)으로 원상선(元相善), 도령장(都領長)으로 김성천(金聖天) 등을 두었다. 무기로는 총기 500여 자루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화약은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얻었고 탄환은 강탈한 납으로 직접 제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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